중세 유럽 기록에 등장하는 전설의 바다 생물 ‘하프구파(Hafgufa)’나 ‘아스피도켈론(Aspidochelone)’은 사실 포악한 괴물이 아닌 평범한 고래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호주 플린더스대학교 해양고고학자 존 맥카시 교수는 최근 공개한 논문에서 중세 북유럽 전설에 등장하는 ‘하프구파’와 ‘아스피도켈론’이 괴물이 아닌 사냥 및 포식 활동에 나선 거대한 고래일 수 있다고 밝혔다.
‘하프구파’와 ‘아스피도켈론’은 북유럽 신화나 전설을 다룬 소설 또는 드라마, 영화를 통해 한 번쯤 접했을 바다 괴수다. 10세기 전후 북유럽 역사서들은 이들 생물이 지나는 배를 통째로 삼킬 정도로 몸집이 크고 아주 포악하다고 묘사했다.
존 맥카시 교수는 기록들이 다룬 ‘하프구파’와 ‘아스피도켈론’의 먹이 활동에 주목했다. 역사서에는 ‘하프구파’와 ‘아스피도켈론’이 토사물 같은 것을 흩뿌린 뒤 입을 벌린 채 수면에 떠 기다리다 달려드는 수많은 물고기들을 꿀꺽 삼킨다고 적혀 있다.
맥카시 교수는 “역사에 나타나는 이런 사냥법은 고래의 먹이 활동과 상당히 흡사하다”며 “당시 사람들은 ‘하프구파’나 ‘아스피도켈론’을 괴물로 묘사했지만, 실은 몸집이 큰 평범한 고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세 문학 전문가들과 논의한 맥카시 교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에서 ‘하프구파’ 및 ‘아스피도켈론’을 바다 괴물이 아닌 일종의 고래처럼 설명한 대목도 확인했다.
2011년 해양학자들은 혹등고래가 고개를 들고 입을 쩍 벌린 채 작은 물고기들이 뛰어들기를 기다리는 보기 드문 상황을 포착했다. 맥카시 교수는 생소하게 여겨진 이런 고래의 포식 스타일이 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사냥법일 수 있다고 봤다.
이런 먹이 활동을 전문적으로 ‘트랩 피딩(trap feeding)’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함정처럼 입을 벌리고 있다 먹이를 낚아채는 방법이다. 학자들은 2011년 혹등고래 이후 비슷한 상황이 여러 차례 더 목격되자 ‘트랩 피딩’을 고래들의 최근 사냥법이라고 생각했다.
맥카시 교수는 “‘트랩 피딩’은 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몸에 익은 고래의 사냥법일 수 있다”며 “아마 옛날 사람들은 집채만 한 고래가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장면에 공포를 느꼈고, 이를 괴수로 표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문헌과 고래의 생태를 결합, 분석한 교수는 ‘트랩 피딩’이 줄잡아 약 2000년 전부터 개발된 고래의 사냥법이라고 결론 내렸다. 향후 연구에서 드론을 활용, 어떤 고래가 주로 ‘트랩 피딩’을 사용하는지 특정할 계획이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