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고도가 4000m에 달하는 티베트 고원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산소를 보다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지금도 진화 중이라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다트머스대학교 연구팀은 25일 발표한 조사 보고서에서 최고 고도 4000m 고원에서 생활하는 티베트 주민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빠른 속도로 진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진화는 동식물이 환경에 적응해 계속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다양한 생물이 과거는 물론 현재도 진화하고 있으며, 이는 인류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티베트 여성들처럼 특수한 환경에서 사는 이들은 진화 속도가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라시아 대륙 중앙부에 펼쳐진 티베트 고원은 공기가 희박해 보통 사람이라면 고산병에 걸릴 가혹한 환경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해발 3500m 이상에서 평생을 살아온 46~86세 여성 417명을 대상으로 출산 회수와 신체 특징을 조사했다. 신체검사 항목에서 가장 중요시된 것은 혈액에 포함된 헤모글로빈(몸에 산소를 운반하는 단백질)의 수와 헤모글로빈이 운반하는 산소의 양(산소포화도)이었다.
조사 결과 티베트 여성은 헤모글로빈 하나로 운반하는 산소의 양이 일반인보다 많았다. 흥미롭게도 아이를 가장 많이 낳은 여성의 헤모글로빈 양은 평균 수준이었만 헤모글로빈의 산소포화도 만큼은 높았다. 이는 산소를 운반하는 양을 최대화하기 위해 혈액이 걸쭉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다트머스대 시에나 크레이그 연구원은 "티베트 여성들의 혈액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하나의 헤모글로빈이 옮길 수 있는 산소의 양이 일반 사람보다 많았다"며 "우리 계산이 맞는다면 누구나 티베트 고원에 정착한 지 1만 년 만에 이런 진화를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헤모글로빈을 늘리면 혈액이 찐득해져 심장의 부담이 증가하게 된다"며 "고지에 잘 적응해 아이를 많이 낳은 여성은 하나의 헤모글로빈으로 옮길 수 있는 산소의 양을 늘리는 진화를 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은 티베트 여성은 폐에 피가 잘 흐르며 심장의 좌심실(산소를 실어 나르는 혈액을 몸으로 내보내는 방)이 평균보다 넓은 사실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일련의 사실들을 통해 고지대에 적응한 여성은 산소 수송과 공급의 효율이 일반인에 비해 뛰어난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결론 내렸다.
시에나 연구원은 "해발고도가 높은 산을 오를 때 인간은 종종 고산병에 시달린다. 고산병은 기압이 낮고 공기가 희박한 탓에 한 번의 호흡으로 흡입할 수 있는 산소가 적어지는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전했다.
연구원은 "비행기조차 뜨지 않는 티베트 고원은 고산병에 걸리기 딱 좋지만 이런 척박한 곳에도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며 "오랜 세월 저산소 환경에 사는 사람들을 연구해 왔지만 티베트 고원 주민들처럼 가혹한 환경에 빠르게 적응한 예는 없다"고 놀라워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