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메리카 평원에 서식하는 고퍼(Gopher)가 화산 폭발로 척박해진 토양을 극적으로 회복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퍼는 포유강 쥐목(설치목) 포유류의 총칭으로 흙파는쥐 과에 속한다.
미국 코네티컷대학교 미아 로즈 몰츠 교수 연구팀은 최근 내놓은 조사 보고서에서 화산 폭발로 폐허가 된 지역에 고퍼들을 전략적으로 풀어놓은 결과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고 전했다.
막대한 화산쇄설류(화쇄류)가 분출되면 인근의 토양이 불탄다. 이렇게 되면 토양은 다공질 경석으로 변해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 되고 만다. 경석질 토양에서는 10~12가지 식물만이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고퍼들을 풀어 화쇄류가 쓸고 간 지역을 파헤치게 했다. 고퍼들은 열심히 경석 속을 파헤치며 하루를 보냈다. 6년 뒤 고퍼들이 파낸 곳에서는 나무가 무려 4만 그루 자라났지만 고퍼를 풀지 않은 지역은 여전히 척박했다.
이 실험은 미국 워싱턴주 세인트헬렌스 산 분화로 쑥대밭이 된 토양을 대상으로 약 40년 전 학자들이 실시한 테스트를 모티브로 했다. 세인트헬렌스 산은 1980년 5월 18일 분화해 57명이 사망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냈는데, 당시 학자들은 폐허가 된 산 주변 토양에 땅을 기막히게 파는 고퍼들을 풀고 변화를 살폈다.
고퍼들이 땅을 갈아엎은 덕에 세인트헬렌스 산 주변의 폐허는 식물이 쉽게 자라는 토양으로 서서히 변모했다. 고퍼가 가져다 놀라운 변화는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미아 로즈 몰츠 교수는 "고퍼들이 땅을 파면 딱딱하게 굳은 표토가 부드러워지는 것은 물론, 유익한 박테리아나 균류가 함께 파헤쳐져 식물 성장을 촉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식물이 자라는 데 특히 중요한 것은 균근균으로, 뿌리 세포에 들어가 양분을 공급하고 흙 속 병원체의 침입을 막아준다. 고퍼의 굴착은 균근균의 활성화에 특히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북아메리카에 5속 35종이 서식하는 고퍼는 거의 지상으로 나다니지 않고 지하에 터널을 뚫어 생활한다. 고퍼는 농작물의 뿌리를 먹어 유해조수 취급을 받지만 탁월한 굴착 능력에 일찍이 많은 학자가 주목했다. 미국 플로리다대학교 연구팀은 2022년 논문에서 고퍼가 번식과 생존을 위해 농사를 짓는 인간 외의 유일한 포유류라고 발표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