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수컷이 다리로 냄새를 맡는다는 놀라운 사실이 곤충학자들의 노력으로 밝혀졌다. 인간보다 먼저 지구상에 출현한 거미는 생태의 수수께끼가 여전히 많으며, 후각 메커니즘도 그중 하나였다.

독일 그라이프스발트대학교 곤충학 연구팀은 최근 조사 보고서를 내고 거미 수컷의 놀라운 후각 시스템을 공개했다. 그동안 거미에게 페로몬 탐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더듬이가 없어 어떻게 감지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연구팀은 한국과 아시아, 유럽을 비롯한 북반구에 널리 분포하는 긴호랑거미(학명 Argiope bruennichi)의 생태 조사 과정에서 후각의 비밀을 알아냈다.

조사 관계자는 "진화 역사가 4억 년에 달하는 거미는 아주 친근하지만 놀라운 생물"이라며 "진동을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고 시력도 뛰어난 거미는 페로몬을 후각으로 감지하지만 정작 코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분포하는 긴호랑거미 <사진=pixabay>

이어 "곤충은 대개 더듬이로 냄새를 느끼지만 거미는 촉각이 없다"며 "일부 곤충이 냄새를 맡기 위한 가진 특수 감각기 역시 거미에게는 없어 이들의 후각은 오랜 미스터리였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후각 기관을 관찰할 거미를 특정하기 위해 범위를 좁혀갔다. 세계 곳곳에 널리 서식하는 거미로 후보를 압축한 연구팀은 성체 크기가 20㎜가 넘는 왕거미과인 데다 성격이 온순한 긴호랑거미를 낙점했다.

긴호랑거미 암수 개체를 모아 고성능 주사전자현미경으로 관찰했더니 성숙한 수컷은 어느 다리에나 무수히 많은 후각 감각기가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이 감각기는 걷거나 사냥을 하거나 암컷과 짝짓기할 때 접촉이 덜하도록 몸통과 가까운 부위에 배치돼 있었다.

거미는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출현했지만 많은 생태가 베일에 가려있다. <사진=pixabay>

조사 관계자는 "다리 아래쪽에는 미각 감각기가 자리해 냄새 감각기와 상호 보완적 배치를 보였다"며 "주목할 점은 거미의 후각 감각기가 수컷 성체에게만 있다는 사실이다. 미성숙한 수컷이나 암컷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는 거미 다리의 코가 다 자란 수컷이 짝짓기할 암컷을 찾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이번 실험에서 후각 감각기는 암컷의 페로몬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언급했다.

긴호랑거미 외에 16과 19종의 거미를 추가 조사한 연구팀은 수컷 대부분 다리에 코를 갖고 있음을 알아냈다. 아시아에 서식하는 문짝거미(학명 Ctenizidae)의 동료 등 원시적인 거미는 예외였다. 이로 미뤄 후각 감각기는 여러 거미가 독자적으로 진화켰고, 개중에는 이를 잃거나 버린 종도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추측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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