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이 맺힌 인물을 저주하는 글로 가득한 로마시대 납판이 1~3세기 매장지에서 발굴됐다. 작성자는 전쟁의 신 마르스에 복수의 성공을 간절하게 빌었다.
프랑스 오를레앙 고고학 역사박물관은 오를레앙에 자리한 18세기 병원 터 발굴조사 보고서를 24일 발표하고 납판 등 부장품의 존재를 일반에 알렸다.
오를레앙의 오래된 병원 터에는 프랑스가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시절 조성된 매장지가 딸렸다. 여기서는 유골 약 60구와 함께 라틴어 및 갈리아어가 새겨진 작은 납판 여럿이 나왔다.

납판은 1세기 전후에 등장한 로마인의 발명품이다. 납을 아주 얇게 펴고 가장자리를 나무 등으로 고정한 뒤 뾰족한 물체로 글자를 새긴 일종의 문서다.
박물관 관계자는 “납판은 전쟁의 신으로 로마인들이 추앙하는 마르스에게 바친 것”이라며 “작성자는 납판에 저주할 인물들의 이름을 빼곡하게 새기고 천벌을 받게 해달라고 마르스에 빌었다”고 말했다.
묘지 자체는 1세기부터 3세기 초에 걸친 로마시대 양식을 따랐다. 다만 시신이 일렬로 매장됐고 여성이나 어린이는 없으며, 시신이 화장되지 않는 등 당시 장례 의식과는 딴판이다. 때문에 박물관은 이곳에 묻힌 망자들이 당시 사회에서 특정 그룹에 속했을 가능성을 떠올렸다.

묘지에서 나온 납판은 총 21장이다. 납판 자체는 당시 로마를 비롯해 지중해 각지에서 사용됐는데, F2199번 무덤에 묻힌 남성의 양쪽 다리 사이에 놓은 납판만 유독 저주로 가득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전쟁의 신 마르스에게 바친 납판에는 부당한 행위를 저지른 이들의 이름이 새겨졌다”며 “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지만, 누군가 저주할 목적이 뚜렷한 점에서 고고학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이달 말까지 발굴 작업이 완료되면 이후 납판의 자세한 분석이 이뤄질 것”이라며 “켈트어에 속하는 갈리아어는 6세기 무렵 사라졌는데, 납판에 새겨진 사례가 드문 점도 주목할 사실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