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심해어 혹등아귀(Humpback anglerfish)가 사상 최초로 얕은 여울에서 포착됐다. 지금까지 심해 잠수정에 의해 드물게 사진이 촬영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발견이다.
심해 생물을 조사하는 민간단체 콘드릭(Condrik)은 최근 공식 SNS를 통해 심해 200m에서 2000m 사이에 서식하는 수수께끼의 수생생물 혹등아귀의 영상을 공개했다.
잠수부의 카메라에 잡힌 혹등아귀는 암컷으로, 스페인 테네리페 섬의 얕은 여울에 홀연히 나타났다. 혹등아귀의 사진과 영상이 가뜩이나 귀하고 죄다 잠수정이 찍은 것이어서 많은 학자들이 주목했다.
콘드릭 관계자는"이번 발견은 큰 충격이다. 이렇게까지 또렷하게, 그것도 대낮에 당당히 헤엄치는 혹등아귀는 본 적이 없다"며 "혹등아귀는 보통 심해에 서식하며 완전한 어둠 속에서 먹이를 사냥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테네리페 섬 해안에서 불과 2㎞ 떨어진 앞바다 근처를 검고 섬뜩한 물체가 떠다니는 광경은 상당한 위압감을 줬다"며 "사진과 영상을 찍은 수중 사진가도 난생처음 겪는 일에 혀를 내둘렀다"고 전했다.
혹등아귀 암컷의 추적 관찰은 약 2시간 이어졌다. 영상을 접한 수생생물 전문가들은 개체가 극도로 쇠약한 상태라고 추측했다. 실제로 이 개체는 최초 발견으로부터 몇 시간 만에 죽고 말았다.
콘드릭 관계자는 "연안에 나타난 이유로는 엘니뇨 현상에 따른 영향을 생각할 수 있다"며 "엘니뇨로 북미 앞바다의 용승류(심해에서 차가운 물이 상승하는 현상)가 약해졌고 수온이나 해류의 변화가 심해지면서 혹등아귀 생태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혹등아귀가 천적에 쫓기다 해수면 근처까지 헤엄쳐 왔을지도 모른다"며 "현재 죽은 개체를 회수해 테네리페 섬의 자연고고학박물관(MUNA)과 연계한 상세한 분석이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심해는 아직 미지의 세계로, 신종 발견이나 의외의 생태계가 꾸준히 확인되고 있다. 2023년 한 해만 태평양 심해에서 5000종 넘는 신종이 발견됐다. 2024년에는 칠레 해저산맥에서 100종 넘는 신종 해양생물이 특정됐다.
혹등아귀는 1863년 영국 동식물학자 제임스 예이트 존슨이 포르투갈령 마데이라 제도 근해에서 처음 발견했다. 열대에서 온대 지역의 심해에 서식하며 극히 드물게 사체나 치어가 발견될 뿐 생태의 대부분이 불분명하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