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의 안치 방향이 일반 매장법과 확연히 다른 중세 무덤이 크로아티아에서 발견됐다. 학자들은 고인이 흡혈귀 등으로 부활할 것을 두려워한 중세 유럽 사회상을 반영한 유적에 주목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자치대학교 고고학 연구팀은 17일 이런 내용의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서 남동쪽으로 약 112㎞ 떨어진 라샤슈카 유적에서 희한한 매장지를 특정하고 조사해 왔다.
13~16세기 조성된 이 무덤에 묻힌 유골 하나는 머리가 의도적으로 절단돼 몸과 조금 떨어진 곳에 놓였다. 나머지 뼈들도 아주 부자연스러운 형태여서 한눈에 일반 매장법이 아님을 짐작하게 했다.

조사를 주도한 나타샤 사르키치 박사는 "중세 슬라브족은 고인이 무덤에서 살아날 수 있다고 여겼다"며 "특히 흡혈귀로 부활하지 않도록 여러 조치를 했는데 이번 무덤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세 유럽의 슬라브 국가에서는 기독교가 도입된 후 사악한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이번 매장지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흡혈귀에 대한 공포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슬라브 국가에는 동유럽 및 중앙유럽에 퍼져 있는 슬라브계 민족이 분포한다. 슬라브계 민족은 러시아, 폴란드, 크로아티아 등의 나라에 살면서 슬라브 제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공통의 문화는 물론 흡혈귀 같은 독자적인 민간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연구팀이 분석한 기묘한 유골은 40~50대 남성으로 판명됐다. 몸통 부분은 엎드린 상태로 묻혔는데 다른 뼈는 고의적으로 위로 들어 올려졌다. 척추나 하지에 육체노동을 했던 흔적이 남았고 머리에 가해진 두 차례 타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르키치 박사는 "남성은 여러 곳에 상처를 입고 있어 생전에 폭력을 당했음을 시사한다. 두개골 손상이 치명상이 됐을 것"이라며 "이런 이상한 매장 방식은 고인이 생전에 사회에서 일탈했음을 의미하며, 사람들은 그가 되살아나 재앙을 가져올지 모른다고 두려워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흡혈귀로 간주된 인물의 무덤은 크로아티아 내에서 여러 차례 발견됐다. 지난해 라샤슈카 유적의 북서쪽 구시가지에서도 비슷한 유골이 나왔다. 망자는 장식된 나무관에 안치됐는데 머리가 없었다.

라샤슈카 유적은 보바르 지역에 자리하며 중세 초기 템플 기사단과 요한 기사단이 점령했다가 15세기 지역 귀족의 사유지가 됐다. 지금까지 총 180기의 무덤이 나왔는데, 흡혈귀로 생각되는 묘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르키치 박사는 "흡혈귀로 간주된 인물을 유럽 여러 국가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묻었다"며 "목 위에 낫을 걸거나 팔다리에 쇠사슬을 칭칭 감고 입에 동전을 가득 담는 등 중세 유럽인들에게 흡혈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