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의 배출가스 규제 이후 특정 해역의 낙뢰가 절반이나 감소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학자들은 아직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기상학자 크리스 라이트 연구원은 최근 조사 보고서를 내고 싱가포르 주변 항로상의 번개 발생 횟수가 최근 수년 사이 반감됐다고 전했다.
싱가포르 앞바다 항로는 원래 낙뢰가 잦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 해역은 세계에서 선박 교통량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0년 선박 연료가 연소되며 배출되는 황 함량을 대폭 줄이는 규제를 도입했다. 이후 신기하게도 싱가포르 앞바다 항로의 번개 발생 횟수가 반으로 줄었다.

선박의 연료로는 주로 유황을 함유한 벙커중유가 사용된다. 싱가포르 근처 항로상의 배 대부분은 거대한 선박들로 대량의 벙커중유를 태우고 유황 입자와 그을음을 뿜어 왔다.
IMO 조치 후 선박들은 거의 100%를 차지하던 벙커중유의 황 함유량을 25%까지 줄였다. 이후 약 4년 만에 싱가포르 주변 항로의 번개가 반감했다.
크리스 라이트 연구원은 “확실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배에서 배출되던 에어로졸 입자가 감소한 것과 관련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에어로졸 입자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액체나 고체 미립자다. 에어로졸 입자는 인간의 활동에 의해 배출되는 인공적이고 해로운 것도 있지만, 삼림 등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 자연 유래의 것도 있다.
에어로졸 입자가 핵이 돼 주위에 수분이 달라붙으면 구름 알갱이가 형성된다. 폭풍우 구름의 경우 상승 기류에 의해 높이 날아오른 구름 알갱이가 얼어 격렬하게 부딪치고 이런 충돌에 의해 정전기가 축적되면서 번개가 발생한다.
크리스 라이트 연구원은 “밀도가 높고 무거운 구름 알갱이가 낙하하면서 가벼운 빙정이 위로 올라가면 구름은 거대한 콘덴서가 되고 축적된 전기 에너지가 방출돼 번개가 친다”며 “싱가포르 항로를 따라 번개가 많았던 것은 선박에서 배출된 에어로졸 입자가 구름 빙정을 늘렸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이어 “2020년 규제로 배들이 배출하는 에어로졸 입자가 줄자 구름이 빙정을 만드는 양이 줄었다”며 “때문에 얼음의 충돌도 줄고 번개가 만들어지기 어려워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학자들은 번개가 인간 활동에 주는 영향을 밝혀내려 애써왔다. 다만 에어로졸이 번개를 일으키는 메커니즘 자체가 아직 불분명하다. 싱가포르 외의 해운 거점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크리스 라이트 연구원은 “다양한 의문을 풀기 위해 인간이 배출하는 미립자가 지구 기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밝히는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