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상에는 향유 같은 방향제가 사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사람들은 향을 입힌 조각상을 종교의식 등 중요한 행사에 동원한 것으로 추측됐다.
덴마크 국립박물관 고고학 연구팀은 19일 이런 내용을 담은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들의 연구는 국제 학술지 ‘Oxford Journal of Archaeology’에 먼저 소개됐다.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조각상 연구를 통해 대부분이 원래 선명한 색을 갖고 있었음을 밝혀냈다. 학계가 주로 시각적 측면에서 조각상을 연구한 탓에 이번처럼 후각적 요소에 집중한 학술 활동은 거의 없었다.

조사를 주도한 세실리 브론즈 연구원은 “이번 분석은 아름다운 고대 조각상이 시각뿐만 아니라 후각적으로도 매력적이었음을 알게 해줬다”며 “고대 문헌과 비문을 분석한 결과 조각상에 향유가 적극 사용됐다는 증거를 여럿 발견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확인한 바로는, 로마시대 정치가이자 철학자, 작가 키케로는 조각상에 향유를 바르는 취미가 있었다. 역사적 유물로 가득한 그리스 델로스 섬사람들은 신들의 조각상에 값비싼 향유를 발랐다는 문헌도 확인됐다.
세실리 연구원은 “이런 기록들을 통해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이 조각을 시각은 물론 후각적 예술품으로 대했음을 깨닫게 된다”며 “특히 신들의 조각상에 향유를 도포하는 것은 종교의식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나 헤라 등 여신의 조각상에는 올리브유와 장미오일 등 특별한 향유가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다”며 “헬레니즘 시대의 시인 칼리마코스는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여왕 베레니케 2세의 조각상이 향유로 촉촉했다고 적어 신은 물론 왕족의 조각에도 향유가 쓰였음을 시사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원래 향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조각에 사용한 것은 크게 이상할 것 없다는 입장이다. 세실리 연구원은 “로마시대에는 꽃향기를 테마로 한 축제 플로라리아가 열릴 정도로 향은 중요한 문화였다”며 “조각에 향을 입힌 것은 이제 막 알아낸 사실이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활동”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이 향을 오래 지속시키기 위해 애썼다는 사실도 파악됐다. 예컨대 대리석 조각의 공정에 사용된 기술 가노시스(ganosis)는 조각의 광택을 낼 뿐만 아니라 향을 유지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세실리 연구원은 “델로스 섬에서는 향유를 제조한 것으로 보이는 공방 유적도 발견됐다”며 “이렇게 만든 향기 나는 조각상들은 더욱 귀한 취급을 받았고, 귀족들 사이에서 비싸게 거래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원은 “이번 발견은 고대 예술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계기”라며 “우리가 미술관에서 보는 조각들이 예전에는 선명한 색깔은 물론, 향까지 가진 살아있는 예술작품이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고 자평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