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아이들은 현실과 사후 세계를 연결하는 영적 매개자(영매)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학자들은 동굴벽화에 찍힌 아이들의 손자국을 근거로 들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 고고학 연구팀은 이런 내용을 담은 조사 보고서를 국제 학술지 아츠(Arts) 최신호에 공개했다.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선사시대 동굴벽화는 표현 기법이나 내용이 제각각이지만 어린이가 제작에 참여한 흔적이 공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연구팀은 아이들이 동굴벽화 제작에 동원된 이유를 다각도로 조사했다. 라스코와 루피냑, 알타미라 등 프랑스과 스페인에 산재한 동굴 약 400개소를 탐사한 연구팀은 4만~1만2000년 전 벽화 제작에 아이들이 영적 매개자로서 참여했을 가능성을 점쳤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아이를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자리하는 영적 매개자로 여겼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pixabay>

조사에 참여한 엘라 아사프 교수는 "동굴이라는 신성한 공간에서 아이들은 초자연적 존재와 교신하기 위한 도구였을 것"이라며 "예술적 수준이 높고 창의성도 돋보이는 동굴벽화는 인류 최고의 회화로 통하는데, 고도의 벽화는 무속인이나 연장자의 주도 하에 아이들이 함께 그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동굴벽화에는 2~12세 어린이의 손가락 흔적이 남아있다. 이런 사실은 고고학·역사학적으로 이미 밝혀진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이유는 아직 불분명하다"며 "어둡고 구불구불한 동굴은 위험한 곳인데 굳이 아이를 동반한 이유는 굉장히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금껏 학자들이 세운 가설은 여러가지다. 가장 유력한 것은 교육 수단이다. 즉 선사시대 사람들은 아이와 동굴벽화를 그리며 공동체의 전통과 습관을 가르쳤다는 설이다. 연구팀은 분명 그런 측면도 고려할 수 있지만 보다 구체적인 뭔가가 있다고 봤다.

선사시대 동굴벽화를 조사 중인 텔아비브대학교 엘라 아사프 교수 <사진=엘라 아사프>

아사프 교수는 "선사시대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있던 세계(저승)와 이승 모두에 관련된 경계의 존재로 간주했다. 때문에 아이는 두 세계를 연결하기 위해 동굴벽화 제작 현장에 동원된 것"이라며 "선사시대 원주민 사회의 어린이 관련 연구 자료와 동굴벽화 의례에 관련된 축적된 지식이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고 언급했다.

세계 각지의 선사시대 문화 기록을 보면, 역사적으로 아이는 이승과 저승, 혹은 우주 전체에 다리를 놓는 매개자로 생각됐다. 아사프 교수는 "인류는 자연과 공생하고 그 혜택을 얻어 생존했다. 음식이 되는 동식물, 도구의 재료가 되는 돌이나 나무 등은 모두 자연에서 받은 것"이라며 "삶을 유지하기 위해 고대인은 정령, 조상의 영혼 같은 신비한 존재와 잘 지내야 했다. 당시 사회는 동굴을 저승의 입구로 여겼고, 종교의식을 통해 영적 존재와 교신하며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고 말했다.

루피냑 동굴의 선사시대 벽화. 유아의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다. <사진=엘라 아사프>

이런 맥락에서 선사시대 사람들은 동굴에서 아이가 연결해준 영적 존재와 대화를 시도했다. 직접 이야기를 나눴을 리는 없고, 아이와 벽화를 그리면서 초자연적 존재와 교신한다고 여겼다.

연구팀은 선사시대 이후의 동굴벽화 등 보다 많은 유물을 조사하면 고대인이 아이를 어떤 존재로 여겼는지 이해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사프 교수는 "동굴벽화의 방대한 패턴에 담긴 정보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공통점을 압축하면 아이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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