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2월 23일 미국. 당시 18세였던 소년 레이와 제임스는 땀에 흠뻑 젖은 채 엽총을 들고 교회로 뛰어 들어갔다. 숨이 턱밑까지 찰 정도로 몹시 흥분한 소년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십자가 앞으로 달려갔다.

귀신에 홀린 듯 십자가를 응시하던 레이는 이윽고 “죽여…죽여”라고 읊조렸다. 마침내 레이는 천천히 엽총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탕’ 방아쇠를 당겼다.

<사진=영화 '콘스탄틴' 스틸>

충격적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제임스는 쓰러진 친구 곁으로 가 피 묻은 엽총을 들어올렸다. 레이와 마찬가지로 총을 입에 문 제임스는 누군가의 계시를 받은 듯 멍한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크리스마스를 불과 이틀 남기고 벌어진 사건에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총성을 듣고 출동한 경찰이 목격한 현장은 처참했다. 먼저 총을 쏜 레이는 이미 죽은 상태였고, 제임스는 얼굴 절반이 날아간 채 숨만 간신히 붙어있었다.

■죽음의 속삭임
동기를 찾던 경찰은 두 사람의 친구들로부터 뜻밖의 증언을 들었다. 모두 평범한 학생으로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 경찰은 살아남은 제임스의 회복을 기다렸다 마침내 조사에 들어갔다.

두 소년이 사건 당일 마리화나를 피운 사실을 입수한 경찰은 환각 상태에서 저지른 우발적 사고로 결론지으려 했다. 하지만 수술을 받고 회복한 제임스는 뜻밖의 말을 했다.

제임스는 사건 당일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언제나처럼 평범한 날이었고, 둘이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맥주를 마셨다. 제임스는 다만 당시 듣고 있던 헤비메탈 음악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제임스는 “음악을 듣던 중 머리가 멍해졌다. 명령을 받은 로봇처럼 몸이 무의식 속에 움직였다. 레이가 갑자기 ‘죽여! 죽여!’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곧바로 엽총을 들고 교회로 뛰어갔다”고 진술했다. 제임스는 여기까지 말하고 괴로운 듯 울음을 터뜨렸다.

경찰은 사고가 음악 탓에 일어났다는 제임스의 주장을 무시했다. 하지만 학자들이 사건 해결에 참가하면서 수사 진행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무의식 상태에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수수께끼의 효과 탓에 총기사고가 일어났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었다.

문제의 곡이 수록된 주다스 프리스트의 앨범

제임스에 따르면 사건 당일 두 소년은 영국 메탈밴드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곡 ‘Better by you, Better than me’를 듣고 있었다. 이 곡은 1978년 발표한 주다스 프리스트의 4집 정규앨범 ‘Stained Class’에 수록됐다.

제임스는 안면 대수술 후 진통제 부작용으로 1988년 사망했다. 소년의 유족은 이 곡을 반대로 재생하면 무의식 속에 사람을 움직이는 악마의 메시지가 등장한다고 주장했다. 유족은 소년들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 읊조렸던 “죽여!”라는 메시지가 곡에 담겨 있다며 재수사를 요구했다.

사망하기 전의 제임스 반스. 얼굴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였다. <사진=유튜브 feacrew 계정 영상 캡처>

■누가 소년을 죽였을까
결국 두 소년의 유족은 앨범 ‘Stained Class’를 발매한 레코드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990년 열린 재판에서 판사는 “소년들이 자살을 기도한 원인은 마약 및 음주일 가능성이 높다. 음악을 듣고 무의식 속에 자살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판결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 재판에는 주다스 프리스트의 보컬리스트 롭 핼포드(당시 39세)가 출석했다. 롭은 “소년들이 들은 곡에 역재생 음성을 삽입한 것은 맞다”면서도 “자살을 하라는 둥 특별한 메시지를 담은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법정에서 진술하는 주다스 프리스트 보컬리스트 롭 핼포드 <사진=유튜브 Metal Matt 계정 영상 캡처>

주다스 프리스트는 재판이 있은 지 3년 뒤 ‘페인킬러(painkiller)’, 즉 진통제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즉각 주다스 프리스트가 제임스를 추모하기 위해 앨범 제목을 진통제로 지었다는 소문이 퍼졌지만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롭 핼포드는 이 앨범 발표 직후 밴드를 일시 탈퇴했다.

■서브리미널 효과의 공포
유족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소년들을 움직인 목소리를 둘러싼 의문은 사건 직후 학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제기됐다. 인지할 수 없는 일종의 메시지에 인간 행동이 지배당하는 일명 ‘서브리미널 효과(subliminal effect)’가 이 무렵부터 일반에까지 알려지기 시작했다.

심리학에서 서브리미널은 지각이 없는 상태, 즉 역하 지각(subliminal perception) 상태를 의미한다. 서브리미널 효과는 역하 지각 상태에서 가해지는 큰 자극을 말한다.

사실 서브리미널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40년대 말부터 연구돼 왔다. 사회적 지각을 주로 연구하는 ‘뉴룩 심리학(new-look psychology)’ 분야의 권위자들이 흥미를 가졌다. 하지만 서브리미널이 크게 주목 받은 것은 광고전문가 제임스 비카리(James M.Vicary)에 의해서였다.

서브리미널 효과, 악마의 속삭임인가 下에서 계속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스푸트니크 네이버포스트 바로가기
⇨스푸트니크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