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팔다리를 잘라내지 못해 시달리는 사람들. 과연 그들은 어째서 자신의 사지를 끊어내지 못해 고통스러워할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장애 중에 ‘사지절단강박장애(四肢切斷强迫障碍)’라는 것이 있다. 국내에선 검색조차 어렵고 용어 자체도 생소한 이 장애는 ‘사지절단애(四肢切斷愛)’라고도 한다. 즉 아무 이상 없는 팔다리를 잘라내지 못해 안달하는 무서운 장애로 사례가 무척 늦게 발견됐을 만큼 학계에 보고된 자료 역시 흔치 않다.

사지절단강박장애는 발견한 학자에 따라 유형과 명칭이 제각각이다. 우선 ‘BIID’가 유명하다. 풀어서 쓰면 ‘Body Integrity Identity Disorder’. 우리말로 ‘신체완전일체성장애’쯤 된다. BIID는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정신과 교수 마이클 퍼스트(64)에 의해 구체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BIID

구글에서 검색되는 BIID에 관한 정의 <사진=구글>

퍼스트 박사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남성으로부터 사지절단강박장애를 처음 발견했다. 이 남성은 당시 팔과 다리가 각각 하나뿐이었다. 그는 직접 운전을 했고 타인의 도움 없이 퍼스트 박사의 방까지 찾아왔다고 말했다.

퍼스트 박사는 내심 남성이 대견했다. 장애를 꿋꿋하게 딛고 일상생활을 하는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이 일부러 다리를 잘라냈다는 말을 듣고 박사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남성을 대면한 퍼스트 박사는 그의 심리상태가 몹시 궁금했다. 결국 박사는 건강한 사람이 사지절단을 간절히 원하는 전혀 새로운 장애가 존재한다고 결론 내렸다. 박사는 이 장애를 ‘BIID’로 명명했다.

퍼스트 박사에 따르면 BIID는 일종의 강박증으로, 자신의 사지가 온전하게 붙어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잘라내려 한다. 박사는 지구상에 수 천 명만이 BIID를 안고 살아간다고 보고 있다.

사지절단강박장애를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싶었던 퍼스트 박사는 심리학자, 정신과 전문의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또한 박사는 BIID의 공포를 널리 알리기 위해 학계에 BIID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애썼다.

퍼스트 박사는 BIID를 가진 사람들의 심리가 ‘성동일성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를 가진 사람들, 즉 트랜스젠더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미용을 위해 수술을 받는 행위 자체도 어떤 의미에서 BIID에 포함된다고 본 것이다. 타인이 봤을 때 아무 문제가 없는 코나 눈을 수술을 통해 성형하려는 욕구가 BIID와 비슷하다는 게 박사의 설명이다.

*아래는 BIID를 안고 사는 한 남성의 사연을 담은 영상이다(출처는 B tv Barcroft 유튜브 공식채널).

■처음 발견한 사람들
퍼스트 박사에 앞서 사지절단강박장애를 정의한 학자가 있다. 1977년 존스홉킨스대학 성과학(sexology) 전문가 존 머니 박사는 이런 증상을 ‘사지절단애증(apotemnophilia)’이라고 정의했다.

‘사지절단애증’은 사지가 잘려나가면서 쾌감을 느끼거나, 혹은 그런 장면을 보면서 흥분하는 증세를 말한다.

1997년 미국 뉴저지 잉글우드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 리처드 브루노는 사지절단애가 대부분 작위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 착안, ‘인위적 장애(FDD, Factitious Disability Disorder)’라고 명명했다.

브루노는 FDD의 증상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째는 사지가 절단된 사람을 보면 성적흥분을 느끼는 것이고, 둘째는 멀쩡한 사람이 목발이나 휠체어를 이용하며 장애인 흉내를 내는 것이다. 셋째는 자신의 사지를 절단하는 강한 욕구를 느끼는 증상이다.

■억지로라도 자르고 싶다
지난 2000년 존 머니 박사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던 미국 소아심리학 전문가 그레그 퍼스 박사는 저서에서 사지절단강박장애를 ‘사지절단동일성장애(AID, Amputee Identity Disorder)’라고 이름 붙였다.

퍼스 박사는 스스로 AID를 갖고 있다고 고백해 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는 유년기 자신의 오른쪽 다리, 구체적으로는 무릎 부근을 잘라내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고 털어놨다. 그의 장애는 의사가 된 뒤에도 계속됐다.

그는 저서에서 사지절단강박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작위적으로 수술을 받아 멀쩡한 신체를 잘라낸다고 지적했다. 퍼스 박사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날아가 로버트 스미스라는 의사를 만났다. 스미스는 사지절단강박장애를 가진 사람의 요구를 받아들여 2명의 다리를 잘라낸 경험이 있었다.

퍼스 박사는 스미스에게 정신과의사로부터 정밀진단을 받는 조건으로 자신의 다리를 잘라내 달라고 요청했다. 스미스는 이에 동의했으나, 그가 근무하던 병원이 이 사실을 알고 사지절단수술을 금지하면서 퍼스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지절단강박장애와는 관계 없음 <사진=영화 '플래닛 테러' 스틸>

사지절단애에 ‘BIID’라는 이름을 붙였던 마이클 퍼스트 박사는 이처럼 사지절단강박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미 신체 일부를 잘라냈거나, 기회만 되면 언제든 다른 부분도 잘라내려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퍼스트 박사는 사지절단강박장애 환자 52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한 결과 9명으로부터 이미 신체 일부를 잘라냈고, 남아있는 부분도 때만 되면 잘라내려 한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퍼스트 박사는 자신이 관찰한 사지절단강박장애를 성도착증이나 정신병, 신체이형장애(Body Dysmorphic Disorder), 즉 멀쩡한 사람이 자신의 신체가 이상하다고 여기는 장애와 구분하기 위해 BIID라는 이름을 만들어냈다.

BIID를 성동일성장애와 비슷한 맥락에서 연구하던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처음 성전환수술이 이뤄진 것은 1950년대인데, 이로부터 신체 일부를 자발적으로 잘라내려 드는 새로운 강박관념, 즉 BIID가 탄생했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또는 그 반대가 되고 싶어 성전환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수술 뒤 성이 바뀔 뿐 어떤 측면에서 정상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지절단강박장애를 가진 사람이 팔다리를 잘라내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환자 스스로 이를 장애로 인식하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스스로 팔다리를 잘라낸 사람들 下에서 계속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스푸트니크 네이버포스트 바로가기
⇨스푸트니크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