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팔다리를 잘라낸 사람들 上에서 계속

■신체이형장애와 신경성식욕부진(거식증)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데이비드 슈피겔 박사는 사지절단강박장애가 신체이형장애, 신경성식욕부진(Anorexia Nervosa)과 매우 흡사하다고 결론 내렸다. 

박사의 가설은 흉악하고 희귀하기 짝이 없는 사지절단강박장애가 실은 아주 흔한 신경성식욕부진의 한 갈래라고 본 것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박사에 따르면 사지절단강박장애 환자는 자신의 신체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품는 경우가 흔하다. 음식을 먹지 않아 몸이 망가져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거식증 환자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박사는 사지절단강박장애를 하나의 질병으로 집중 연구함에 있어 신경성식욕부진 등 비슷한 병례들과 비교 분석, 예방법이나 치료법을 찾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봤다.   

■치료법은 어디에도 없나
현재로서는 사지절단강박장애가 어떤 환경에서 발병하는지, 그리고 치료법은 무엇인지 명쾌한 답변은 없다. 미국 워싱턴 메디컬센터 연구팀은 20여년 전인 2003년 논문을 통해 사지절단강박장애가 성적, 그리고 정신적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사지절단강박장애는 ‘성적망상’을 사지를 잘라내면서 충족하려는 욕구에서 시작된다. 다만 이를 완화할 대책이나 약물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사지절단강박장애를 BIID, ‘Body Integrity Identity Disorder(신체완전일체성장애)'로 정의한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정신과 교수 마이클 퍼스트 박사에 따르면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사지를 얼마만큼, 그리고 어느 부위를 잘라낼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환자들이 가장 잘라내기를 원하는 부위는 왼쪽다리 무릎 상단 10cm 부근. 이와 별도로 손가락과 발가락은 모든 환자가 잘라내기를 희망한다. 

퍼스트 박사는 사지절단강박장애 환자들이 원하는 절단 부위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처음 찾아왔던 BIID를 가진 남성은 유년기부터 양 다리를 모두 잘라내려 했다.

성인이 된 남성은 불의의 총기사고로 왼팔을 잃었는데, 그럼에도 다리를 잘라내고 싶은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환자들이 잘라내려는 특정 부위가 파악되면 이에 맞는 치료법도 개발될 것이라는 게 퍼스트 박사의 생각이다.

박사는 연구를 통해 사지절단강박장애를 가진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유년기에 자신이 정상이 아님을 깨닫는다는 것을 알았다. 퍼스트 박사가 처음 만난 BIID 남성의 경우도 그랬다. 남성은 박사와 면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지를 잘라내야겠다는 욕망이 컸다기보다 팔다리가 정상적으로 붙어있는 것에 대해 위화감을 느꼈다. 네 살 때 밖에서 뛰어놀다 ‘팔다리가 없으면 어떨까’ 상상했던 기억이 난다. 팔다리가 없다고 생각하니 몹시 즐거웠다. 서부영화를 볼 때도 팔다리를 다친 부상자를 보면 희열을 느꼈다.”

중요한 것은 이 남성이 실제로 사지를 절단하면 장애가 없어질 걸로 알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슈피겔 박사는 이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다. 사지절단강박장애는 일종의 강박증인데, 현재까지 각종 강박증에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는 점에서 팔다리를 잘라낸다 해도 증상이 치료되지 않을 거라는 주장이다.

슈피겔 박사는 정신요법 가운데 사지절단강박장애 치료방법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반응방지(response prevention)’ 또는 ‘사고중지(thought-stopping)’ 요법을 쓰면 환자가 사지절단에 대한 욕구를 가질 때마다 이를 억제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마이클 퍼스트 박사는 이 요법에 회의적이다. 반응방지, 사고중지를 포함, 여러 요법을 이미 써봤지만 효과가 없었다는 것. 치료법 개발이 중요하지만 현재로서는 실제 팔다리를 잘라내는 것 이외에 사지절단강박장애 환자들의 욕구를 충족할 방법은 없다는 게 그의 견해다.

■지극히 보통사람들
퍼스트 박사는 사지절단강박장애 환자들이 이 증상만 빼고 본다면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말한다. 대부분 평범한 가정과 직장을 갖고 있으며, 환자 중에는 의사, 변호사, 대학교수도 있다.

지난해 9월, BBC가 전한 23세 여성 엘레나 스톤의 사연은 영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지극히 평범한 이 여성은 사지절단강박장애를 앓은 끝에 이를 부모와 공유하고 해결책을 찾았다. 결국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기로 결정했고, 부모 역시 동의한 경우. 다리를 절단한 뒤에도 일상생활도 무리 없고 전보다 활력을 찾았다는 엘레나의 말에 시청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와 관련, 데이비드 슈피겔 박사는 “정신병을 가진 사람들을 겉으로만 보고 가려내는 것은 원래 어렵다. 정신병자들이 질환 테스트를 쉽게 통과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 때문에 사람들 가운데서 먼저 사지절단강박장애 환자를 판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지절단강박장애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증세를 정식 장애로 구분하고 국제적 차원의 활발한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명한 사건

멜로디 길버트 감독이 2003년 선댄스영화제에 출품한 영화 'Whole'. 사지절단강박장애 사람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사진=영화 'Whole' 스틸>

1988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살던 전직 외과의사 존 로널드 브라운(당시 77세)에게 낯선 남성이 찾아왔다. 필립이라는 이 남성은 왼쪽다리를 절단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의사면허가 없던 브라운은 큰돈을 준다는 필립의 제안에 응했다.

두 사람은 국경을 넘어 멕시코에 은신처를 구했다. 하지만 1960년대 여러 번 성전환수술을 하다 실패해 면허가 박탈된 브라운은 의사로서의 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절단수술 자체가 일반적으로 꽤 어렵다는 것을 간과했던 브라운은 결국 필립의 다리를 잘랐지만 봉합을 제대로 못했다. 수술은 실패했다.

다급해진 브라운은 경찰의 눈을 피해 필립을 모텔로 옮겼다. 하지만 절단된 부위가 빠르게 괴사했다. 결국 필립은 수술 이틀 만에 모텔에서 숨을 거뒀다.

브라운은 2급 살인죄로 기소됐고, 1999년 10월 유죄가 확정돼 15년형에 처해졌다. 당시 신문들은 필립이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다리 절단을 의뢰했다고 보도했다.

2003년 5월 여성감독 멜로디 길버트가 선댄스영화제에 출품한 다큐영화 ‘Whole’은 사지절단을 열망하는 사람들을 다뤄 화제가 됐다. 영화 속에는 플로리다에 사는 남성이 나오는데, 그는 병원에 실려가 절단수술을 받기 위해 일부러 다리에 총을 쐈다. 병원에서 다리를 잘라낼 요량으로 일부러 드라이아이스로 다리를 감싼 영국 남성도 등장한다.

같은 해 11월에는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에서 전기톱으로 자신의 다리를 잘랐다가 대량출혈로 사망한 사지절단강박장애 남성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정신병 아닌 장애로 인정해야
의사들 사이에서는 BIID, FDD(인위적 장애, Factitious Disability Disorder), AID(사지절단동일성장애, Amputee Identity Disorder) 등 용어 자체도 다양한 사지절단강박장애를 보다 구체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즉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등록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퍼스트 박사는 사지절단강박장애를 DSM에 등재하면 보다 많은 학자가 연구에 매진할 수 있고, 치료법도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별도로 치료법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사지절단강박장애 환자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지절단강박장애 환자에 한해 합법적 사지절단을 시행하자고 주장하는 의사 로버트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의거, 환자의 고민을 들어주고 병을 고쳐주는 게 우리의 의무다. 사지절단강박장애 환자가 신체를 잘라냄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면 응당 의사가 손을 써줘야 한다.” <끝>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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