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구소련(현재의 러시아)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시대, 세계의 패권을 쥐기 위한 양측의 경쟁은 대단했다. 핵무기를 위시한 군사력 싸움부터 은밀하게 적을 쓰러뜨릴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며 연구를 거듭했다. 당연히 수많은 학자들이 동원돼 온갖 실험을 진행하며 정부가 만족할만한 결과물 만들기에 매달렸다. 

이 중에는 영화같은 황당한 분야, 일테면 초능력 같은 것도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중국과 티벳의 승려로부터 뇌파의 비밀이나 신비한 신체능력 정보를 수집한 일례가 유명하다. 심지어 소련은 미국을 쓰러뜨리기 위해 흑마술(black magic)을 파고들었다. 소련의 이 비밀스러운 연구는 CIA 문건을 통해 그 존재가 드러났다. 

1977년 CIA 보고서 '소련과 동유럽의 초심리학(Soviet and East European Parapsychology)'에 따르면, 소련은 전쟁병기로 이용하기 위해 흑마술과 사이코트로닉스(psychotronics) 장치를 연구했다. 사이코트로닉스란 전자파 등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사람의 심리에 변화를 주는 것을 뜻한다.

PSI 군사실험을 다룬 코믹영화의 한 장면 <사진=영화 '초[민망한]능력자들' 스틸>

1969년 소련은 이 흑마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기밀임무를 수행할 조직까지 창설했다. D.G.미르자라는 인물이 이끈 이 조직은 모스크바에 비밀 연구소를 마련하고 흑마술, 마녀의 능력을 가진 인물을 수소문했다.

조직은 흑마술의 종류를 식별하고 평가하는 임무도 맡았다. 이를 토대로 초현실을 다루는 어떤 시스템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조직이 모은 정보와 보고서는 다른 연구분야, 일테면 초능력이나 군사훈련 등에 충분히 활용될 만큼 가치를 인정 받았다. CIA는 이 보고서가 소련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1970년대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초능력과 흑마술 등 일면 황당하게 들리는 연구가 진지하게 진행됐다. 양측은 이를 통해 초능력자 부대를 양성, 은밀하게 적을 제거하고 세계의 패권을 잡고자 했다. 모두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지만, 냉전시대 양측의 흑마술 및 초능력 연구를 파헤친 논문도 적지 않다. 

양측의 초능력 전쟁은 책에도 등장한다. 1997년 미국 작가 짐 슈나빌이 펴낸 '리모트 뷰어(Remote Viewers:The Secret History of America’s Psychic Spies)'가 대표적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미국과 소련이 은밀하게 행했던 다양한 초능력 부대 실험을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소련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와 러시아 연방군 총참모부 정보총국(GRU)은 소련 동부의 광활한 영토를 샅샅이 뒤지며 이름난 주술사를 찾아다녔다. 시야를 넓혀 수행을 거듭한 티벳의 승려나 기력이 뛰어난 몽골 기공사도 섭외하려 했다.  

또한 시베리아에 자리한 제8특수부(Special Department No. 8 in Siberia)에서는 주술사들이 모인 가운데 실험도 진행됐다. 엄청난 염력을 사용해 멀리 떨어진 곳을 달리는 노면전차 안의 사람을 조종하거나 몸집이 작은 동물을 죽이는 등 내용이 제법 구체적이었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은밀한 첩보전을 다룬 영화의 한 장면 <사진=영화 '나의 아버지는 스파이' 스틸>

소련의 유명한 초심리학자 라리사 빌렌스카야는 텔레파시 연구로 이름을 날린 I.M.코간의 연구실에서 이런 실험도 진행했다. 라디오로 해외의 정치가 연설을 들으면서 염력을 동원, 유해 PSI(초능력 또는 초현실현상) 입자를 보내는 내용이었다. 소련의 정보전달문제연구소(IPPI, Institute for Problems of Information Transmission)에 모인 티벳 고승들이 의식을 집중해 멀리 떨어진 사람의 두개골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IPPI와 카자흐스탄의 한 연구소에서는 주술사들이 마트료시카 인형(러시아 전통인형)과 손으로 조각한 나무 숟가락,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모형 등 아무 의미 없는 사물에 사악한 PSI 에너지를 쏘아대는 실험을 실시했다. 사람들이 믿는 이른바 흑마술의 저주로, PSI 에너지를 맞은 대상은 사물이든 생물이든 쇠약해진다는 가설을 증명하려 했다. 

짐 슈나벨은 이 주술사들의 능력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술했다. 이들의 PSI 에너지를 맞으면 작은 동물, 심지어 인간의 심장을 멎게 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들을 책에서 다뤘다. 조지 클루니와 케빈 스페이시, 이완 맥그리거, 제프 브리지스 등 연기파가 총출동한 영화 '초[민망한]능력자들'(2010) 역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 영화팬이라면 참고할 만하다.

특히 슈나벨은 소련이 이런 PSI 에너지를 대량으로 집중 발사하는 장치도 개발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생체에너지 분야의 대가인 소련 과학자 빅토르 이뉴신 등을 동원한 이 장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PSI 에너지로 신경이나 뇌활동을 제어할 사악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사람을 갑자기 공격적으로 만들거나, 불안에 떨게 하고 방향감각을 잃게 만드는 장치였다. 뇌졸중 및 심장발작을 일으키고 기억 조작도 가능했다. 물론 이론상으로 말이다.

전직 KGB 관계자인 니콜라이 코클로브는 소련이 이 기계를 북미 지역을 대상으로 사용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1970년대 소련과 미국 사이에서 실제로 벌어진 이 기괴한 실험들에 대해 짐 슈나벨은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미국 CIA 요원들은 자신들의 정보수집이 소련의 광기를 멈추는 결정적 역할이 됐다고 믿는다. 소련은 흑마술과 염력을 군사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노력했고,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었다. 이를 통한 PSI 장치가 결국엔 아무 쓸모 없는 고철이란 사실을 CIA가 먼저 밝혀내면서, 그들의 세금낭비도 마침내 멈출 수 있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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