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은 겉으로 멀쩡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력이나 기운의 영향력이 맞물려 조정되면서 유지된다. 낮과 밤, 빛과 어둠, 양과 음, 남과 여 등 서로 다른 두 세력은 상극이면서도 조화를 이뤄가며 세상을 지탱하는 중요한 시스템의 일부로 작용한다.
선과 악의 경우도 마찬가지. 둘은 극과 극의 성질이지만 조화를 이뤄가며 세상을 구성해 왔는데, 최근 악의 세력이 커지면서 유럽 교회들과 바티칸이 엑소시즘(퇴마의식) 전문가 양성에 집중하는 실정이다. 심각한 환경오염이나 대형사고, 자연재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재앙이 잇따르며 이런 위기감을 종교계는 물론 일반에도 팽배한 상황이다.
이 가운데, 퇴마사(엑소시스트)가 실재로 접한 엑소시즘의 실체가 일반 상식과 다르다는 주장이 계속된다. 대표적인 것이 악마의 생김새. 악마는 만화나 영화 속에서 거대한 뿔과 뱀의 눈, 염소의 다리, 불타는 날개, 긴 꼬리 등이 붙은 인간형으로 특정되곤 한다. 하지만 엑소시스트들이 실재 퇴마의식 도중 접한 악마의 실재 겉모습은 이와 한참 동떨어져있다.
17년간 악마를 퇴치해온 미국의 여성 엑소시스트 렌 워커는 이와 같은 일반의 궁금증에 충격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악마는 우리가 아는 전형적 이미지와 달리 해물과 같은 의외의 형상을 하고 있다. 렌 워커 외에 악마의 구체적 형상에 대해 이야기한 퇴마사는 딱히 없는 것이 현실이다.
렌 워커는 네거티브 에너지 전문가다. 원래 물리학에서 다루는 개념인데 퇴마사들 사이에서는 악의 사악한 기운으로 해석된다. 렌 워커에 따르면 악마를 실재로 목격할 수 있는 퇴마사는 네거티브 에너지를 잘 다루는 극히 소수에 한정되며, 이 때문에 악마에 대한 기록은 많지만 그 겉모습에 대한 실증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악마의 겉모습에 대해 렌 워커는 “마치 문어와 가오리, 해파리를 교배한 것 같았다. 사람에 빙의되는 악마는 모두 같은 모습”이라며 “윗부분은 문어와 같은 둥근 형태이고, 몸 중간쯤 가오리 같은 지느러미가 붙어 있기도 하다. 아랫부분은 문어보다 더 가늘고 긴 해파리 다리와 같은 형상”이라고 설명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알고 있던 악마의 이미지는 확 달라지게 된다. 두 다리로 걷고 이따금 하늘을 날며 불을 뿜어내고 거대한 낫을 휘두르는 인간형 악마 이미지는 허구인 셈이다. 그보다는 미국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우주 생물 크툴루(Cthulhu)와 흡사하다. 크툴루는 렌 워커가 설명한 문어발 같은 촉수와 가오리 지느러미 같은 날개를 가졌다. 참고로 크툴루는 러브크래프트의 1928년 단편소설 '더 콜 오브 크툴루(The Call of Cthulhu)'에 첫 소개된 이래 선악의 대결이나 판타지를 다룬 소설, 게임 등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어두운 에너지로 가득한 위험천만한 세계에서 일하는 렌 워커는 이전에 자신도 악마에 사로잡힌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 경험을 통해 생전 접근할 수 없는 비현실적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는데, 동양에서는 이를 빙의라고 정의한다.
이에 대해 렌 워커는 “실제로 빙의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사이킥 파워(psychic power), 즉 영적인 힘이 극도로 발달된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다”며 “만약 빙의한 엑소시스트가 이 세계와 파라노말(paranormal, 초자연적인) 세계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없다면, 아주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렌 워커는 악의 세력이 강해졌다지만, 엑소시스트들은 빙의된 사람들과 빙의됐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빙의 문제로 상담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실제 악마가 아닌 정신적 질환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며, 대부분의 엑소시스트들은 그 차이를 모른다며 워커는 안타까워했다.
그는 “엑소시스트의 능력이 진짜인지를 가리기 위해서는 악마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된다”며 “대개의 경우 만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외형을 설명하겠지만, 한 마디로 그건 난센스”라고 단언했다.
이어 “악마에 걸린 자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행위 전부는 무교적인 세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세계를 보는 것은 아주 훌륭한 엑소시스트만이 가능하다”며 “악마를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는 감각만으로 악마를 볼 줄 안다. 그것들이 존재하는 아스트럴한 세계로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엑소시스트는 사람들이 악마가 아닌 단순한 망자의 영혼에 빙의되는 경우도 많으며, 특화된 엑소시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콜린 디멧이라는 엑소시스트는 어떤 귀신이 주로 인간에 빙의하는 지 알아야 퇴마가 효과적이라고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 매달리는 영혼은 주로 방황하는 경향가 있으므로 엑소시즘 자체가 공감과 애정으로 채워져야 한다. 교통사고 등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영혼은 스스로 크게 당황하고, 위안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에 빙의하려 하는데, 이는 동양의 무속에서도 주장하는 바다.
다만 이런 방황하는 영혼이 모두 순수한 것은 아니며, 대부분의 경우 빙의는 이승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콜린은 분석한다. 세상에 강한 애착을 가진 사람이 죽으면 이승에 사로잡힐 수도 있고, 이것이 빙의로 발현된다는 이야기다.
그는 “예컨대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의 영혼은 술고래에, 연쇄살인마의 영혼은 ISIS(이슬람국가) 같은 극악한 테러범에 빙의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사악한 영혼은 자신의 목적을 대신할 수 있는 인간을 찾아헤매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15개나 되는 영혼에 빙의돼 우울증을 앓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의 집착을 풀어줄 대상을 찾는 영혼들이 한꺼번에 들러붙은 것”이라며 “아무리 사악한 영혼이라도 사람 몸에서 쫓아내려면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공격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포와 공격에 의해 악이 증식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콜린과 렌 워커는 최근 엑소시즘의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엑소시즘의 실천 자체가 어린이와 약자에 대한 학대가 되고 있다고 봤다. 신체적 혹은 정신적인 질병을 초자연적 현상으로 보는 것은 적절한 의료를 받을 기회를 빼앗아 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바티칸 공인 국제 엑소시즘 협회에서는 엑소시즘을 받기 전에 반드시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