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 上에서 계속
9. 요한 바오로 2세도 퇴마사였다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는 대단한 사랑을 받은 교황이었다. 제264대 교황(재위 1978∼2005)인 그는 가톨릭 교회 안팎의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구교와 신교 일치운동에 전념하는 한편, 온갖 문화와 종파의 사람들을 결합시켰고 관용과 평화를 위한 노력으로 세계인의 칭송을 받았다. 사람들은 2005년 거행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 당시 종교와 종파를 떠나 성자의 소천을 지켜보며 애도했다.
인자한 표정과 선한 영향력으로 유명한 요한 바오로 2세도 젊은 시절은 엑소시즘에 참여했다. 19세이던 1939년, 소녀에 빙의한 악마를 퇴치했다는 소문이 교회 안팎에 자자했는데, 스스로 이에 대한 진실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일부에선 엑소시즘이 아닌 단순한 축복이었다는 설도 있다.
10. 위험천만한 가짜 악마퇴치
잘 알려졌듯 악마퇴치는 매우 위험한 의식으로 주의가 따른다. 아무리 숙련되고 신앙이 깊은 구마사제라 하더라도 사소한 실수만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특히 구마의식 중 벌어지는 실패는 치료 대상을 극한상황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스스로 잘 훈련 받은 사제라고 포장하는 가짜들이다.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구마의식 중 가짜 사제나 아마추어가 동원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는 게 교회 관계자들의 지적. 결과적으로 환자가 심하게 다치거나 최악의 경우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는 사제가 악마가 빙의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때려 숨지게 해 논란이 일었다. 뉴욕의 17세 소녀는 단순한 정신질환을 앓는 어머니가 악마에 씌었다고 착각, 질식시킨 적도 있다.
1997년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서는 악마에 빙의됐다고 소문난 한 기독교인이 사람들에 짓밟혀 죽었다. 브롱크스에서는 5세 소녀가 악마를 쫓아내려는 사람들 탓에 암모니아와 식초를 억지로 마셨다가 식도와 위장이 녹아내리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11. 종종 다른 질병을 유발하는 엑소시즘
옛 문화에서는 악마 빙의라고 여겨지던 것들이 현대에 와서는 단순한 정신질환으로 판단되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만 해도 퇴마사들조차 심각한 정신분열이나 간질, 뚜렛병(틱장애) 등을 악마의 소행으로 혼동하곤 했다.
특히 당시엔 전문장비가 없어 퇴마사들이 애를 먹었다. 엑소시즘에는 실제 CT 촬영 장비 같은 기술의 산물이 동원되곤 한다. 과거엔 이런 장비도 없었을 뿐더러, 정신질환이 병이라는 인식이 정착되는 데 수백 년이 걸렸다는 점에서 히스테릭한 증상들은 모두 악마의 소행으로 치부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 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덜 발달된(아주 위험한) 엑소시즘을 받다 병신이 되거나 죽음을 맞았다.
12. 거룩한 웃음현상(Holy Laughter)
1990년대, 전 세계 교회에서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일명 '거룩한 웃음(Holy Laughter)'인데, 말 그대로 종교의식 중에 갑자기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기묘한 소동이다. 특히 은사적 기독교(Charismatic Christianity)계 교회에서 잘 관찰됐다. 은사적 기독교란 성령의 역사, 영적 은사 등 신자 생활의 기적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한 형태로 199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다.
예배나 미사, 법회 도중 신도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비상식적이란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교회가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는 곳임을 감안할 때, 갑자기 터지는 웃음이 사악한 악마가 신도를 조종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영국의 신학자이자 종교계혁자로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 역시 자신의 미사에서 이 거룩한 웃음을 똑똑히 목격했다. 처음엔 그도 이를 악마의 소행이라 생각했지만, 끝내 수수께끼는 풀지 못했다. 일각에선 이 소름끼치는 웃음이 예배당에 머무는 선한 영혼에 의해 신도가 극단적 행복감을 느낀 결과라는 낙관적 해석도 나온다.
13. 악마 빙의의 유형은 다양하다
사람이 악마에 씌이는 상황은 이유나 결과가 아주 다양하다. 악마가 사람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전형적 귀신들림이지만 가톨릭의 정의에 따르면 여러 가지 다른 형태가 존재한다.
빙의는 대개 악마가 인간의 몸을 빼앗은 결과다. 영어권 구마사제들은 침입(infestation)이라고 표현한다. 전술했듯 이 침입에도 아주 다양한 유형이 있다. 악마는 집 안의 물건이나 동물, 가옥 그 자체에 홀리기도 한다. 온 집이 하나의 귀신 형상을 한 영화 '아미티빌 호러'의 무시무시한 포스터는 악마가 집 자체에 들러붙는 현상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다른 종류의 빙의 중 복종(subjugation)이 있다. 말 그대로 사람이 자진해 악마를 몸으로 맞이하는 경우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종교가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원래 악마는 틈만 나면 사람의 몸에 들어가려 애쓰는데, 신앙(법력)이 두텁거나 영혼이 맑은 경우 뜻한 바를 이루기 어렵다.
참고로 무속신앙에서는 단순히 기력이 약한 경우에도 귀신에 씌이기 쉽다고 본다. "기가 허해서 그렇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기가 허하다는 건 그만큼 귀신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기 쉽다는 뜻이다.
14. 악마퇴치는 치료이지 징벌이 아니다
악마를 쫓아내는 방법들은 여전히 많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구마사제가 성경 구절을 읽고 기도를 반복하며 귀신이 씌인 사람을 넘어뜨리거나 성수를 뿌리는 행위는 영화 등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 실제 구마의식에서는 영화보다 특수한 단어나 아이템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치료수단만큼 중요한 건 악마퇴치의 궁극적 목적이다. 가톨릭 교회는 악마가 들린 사람들은 자유롭게 하는 과정이 치료이며, 절대 악마에 대한 징벌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때문에 사제들은 환자의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악마를 끄집어내려는 아마추어 엑소시즘을 경계한다. 잘 훈련 받은 구마사제들은 어디까지나 환자에게서 악마를 꺼내 치료하는 것을 엑소시즘의 궁극적 목표로 생각한다.
15. 대중문화와 관련 깊은 엑소시즘
1973년 개봉한 영화 '엑소시스트(The Exorcist)'는 당시 일반은 알지 못했던 악마 빙의와 엑소시즘에 관한 다양한 트리비아를 담고 있다. 악마에 씌인 소녀의 목이 꺾여 돌아가고, 알 수 없는 말로 저주를 퍼붓거나 공중에 붕 뜨는 장면들은 사람들에게 공포 이상의 감각을 맛보게 했다. 사제가 소녀와 마주하는 방의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 입김이 나오는 신은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영화는 당시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주목 받았다. 신문들은 1972년 닉슨의 재선을 노린 무리가 워터게이트빌딩 민주당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전무후무한 정치사건보다 이 영화를 크게 다뤘다.
이후 다양한 영화와 TV프로그램들이 엑소시즘을 연구하고 해석하기 시작했다. 영화 '엑소시스트' 개봉 이후 약 50년간, 악마 빙의에 대한 보고나 사례들은 대중문화 관계자들에게 아주 좋은 콘텐츠 소재로 여겨지고 있다.
엑소시즘이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주면서 관련 콘텐츠가 인기지만 시청률에 집착한 일부 작품들은 엑소시즘을 과대포장하거나 단순한 오락거리로 전락시키고 역사와 의미를 곡해하기도 한다. 때문에 가톨릭 교회는 이런 문화에 노출된 대중 스스로 악마 퇴치의 의미나 심각성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16. 악마 세계에도 계급이 존재한다
천사의 세계에 서열이 있는 것처럼, 악마들도 엄연히 계급을 가지고 있다. 17세기에 활동한 유명한 엑소시스트이자 악마 연구가 세바스찬 미카엘리스는 천사들의 서열에 대응하는 '악마의 계급(Hierarchy of Demons)'을 정리해 발표했다.
미카엘리스의 '악마의 계급'은 생각보다 복잡한데, 가장 꼭대기에 있는 악마는 루시퍼다. 그 밑에 벨제부브(Beelzebub, 바알세불), 리비아탄(Livyatan), 아스모데우스(Asmodeus), 베리드(Berith), 아스타로스(Astaroth), 벨리알(Belial) 등 한 번은 들어봤을 악마들이 1~3계급을 구성한다.
악마의 계급에 대한 연구는 오래 전부터 진행됐고 세바스찬 미카엘리스 외의 학자들도 나름의 결과물을 완성하면서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혔다. 편저자가 밝혀지지 않은 17세기 중반의 악마서 레메게톤(Lemegeton)은 솔로몬이 봉인한 일흔 둘의 악마, 일명 '솔로면의 72 악마'를 담아 악마연구가들 사이에선 바이블로 통한다. <끝>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