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젬병인 사람들은 길게 나열된 숫자만 봐도 속이 메스껍고 현기증이 난다. 아무리 수학책을 들여다봐도 무슨 소린지 감조차 안 잡히는 사람들에게 학창시절 수학시간만큼 피하고 싶은 순간은 없다. 

개중에는 수학을 못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는 피에로공포증이나 배꼽공포증, 만찬공포증 등 듣도 보도 못한 공포증들이 존재하는데, 수학공포증도 마찬가지다. 의외로 흔한 이 공포증은 단순히 수학이 싫어 책만 봐도 고개를 돌리는 것과는 심적 고통의 수준부터가 다르다.

■생각보다 흔한 수학공포증

수학천재들을 다룬 영화는 의외로 많다. <사진=영화 '뷰티풀 마인드' 스틸>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연구팀은 수학이 사람에게 주는 공포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수학문제를 풀게 하면서 뇌를 들여다보는 방식이었다. 뇌의 각 영역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 수학이 사람에 주는 공포의 수준을 측정하는 게 핵심이었다.

연구팀은 수학시험을 치르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 30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장치로 스캔했다. 그 결과, 일부 초등학생은 공포심을 느낄 정도로 수학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에 동원된 30명 중 수학을 무서워하는 학생의 뇌 편도체(amygdala)는 시험시간에 활동량이 급증했다. 뇌의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 긴장을 관장하는 영역이다. 우리 뇌의 편도체는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긴장과 불안, 공포심을 유발해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한다. 사람뿐 아니라 고양이 등 동물에게서도 이 활동이 관찰된다. 이 편도체에 이상이 있을 경우, 우울증을 야기한다는 보고도 있다.

연구팀 관계자는 “수학을 못하는 사람은 흔하지만 일부는 숫자에 커다란 공포를 느낀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은 적다”며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일련의 공포증은 심적 안정을 취하거나 적절한 지도·교정을 받아 극복할 수 있다. 수학공포증도 마찬가지인지 알아보는 게 우리 실험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육체적 고통까지 부르는 수학

전문가들은 끈기 있는 수학교육이 중요하다도 입을 모은다. <사진=pixabay>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이 수학문제를 강압적으로 떠올리게 되면 뇌가 육체적 통증을 겪을 때와 똑같이 반응한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미국 시카고대학교 연구팀은 수학을 잘하는 성인 14명과 정반대의 성인 14명을 동원한 실험에서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에게 '수학 수업 직전' '수학이 졸업 필수과목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등 각종 상황을 부여한 뒤 fMRI(기능적자기공명영상)장치로 뇌를 스캔했다. 이어 실제 수학문제를 풀 때 각 피실험자들의 뇌가 보이는 반응도 조사했다. 

그 결과, 수학에 약한 피실험자들은 수학과 관련된 생각을 떠올릴 때 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뇌 영역 활동이 활발해졌다. 실제 수학문제를 풀 때는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연구팀 관계자는 "수학에 약한 사람들은 수학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뜨거운 난로 위에 손을 얹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며 "교사들이 강압적이기보다 시간과 끈기를 갖고 수학교육에 임해야 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인지치료와 교육으로 개선 가능

어려서부터 수학을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못하는 수준을 넘어 공포에 사로잡히는 사람도 있다. <사진=영화 '어메이징 메리' 스틸>

스탠퍼드대학교 연구팀은 편도체 활동이 급격하게 늘어난 학생들을 대상으로 추가 실험에 나섰다. 수학 수업을 진행하면서 숫자로 인해 야기된 공포감을 줄이기 위한 치료를 병행했다.

구체적으로 연구팀은 8주간 해당 학생들에게 계단식으로 수학수업을 받도록 했다. 학생이 힘들다고 호소하면 즉시 중단하고 쉬게 했다. 숫자와 친해지는 방법을 알려주고 문제를 못 풀거나 틀려도 혼내지 않았다. 이와 함께 인지행동치료(인지치료)를 통해 수학으로 받은 불안감을 줄이도록 배려했다.

인지치료란 사고방식의 변화를 통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심리요법의 일종이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비관적으로 변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인지치료는 생각의 균형을 잡아 스트레스에 능숙하게 대처하는 마음 상태를 만들어 간다.

8주가 지난 뒤 연구팀은 다시 학생들의 뇌를 MRI로 스캔했다. 그 결과 교육과 인지치료 전에 비해 수학으로 인한 공포감이 크게 줄었다. 수학의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낸 학생도 있었다. 자신감이 붙은 학생들은 당연히 수학성적도 올라갔다.

연구팀 관계자는 “대개 수학을 못하면 창피를 당하고 교사에게 혼난다는 생각이 쌓여 수학공포증으로 이어진다”며 “수학에 대한 불안감은 생각보다 심각하며, 장기적으로 다양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행 연구를 보면 수학을 잘하는 초등학생이 고교생활이나 이후 인생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증명됐다”며 “숫자와 기호가 일부 학생의 두통을 일으키는 근본적 원인은 향후 연구들을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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