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유령선 이야기를 하면서 빠지지 않는 것이 사라진 유령선 ‘베이치모(Baychimo)’다.
1322t 규모의 화물선 베이치모는 독일 함부르크의 모피회사로부터 발주를 받은 스웨덴 선박회사가 건조했다. 1914년 진수식을 마친 이 배의 원래 이름은 ‘앵거마넬펜(Ångermanelfven)’이었다.
유령선 베이치모의 암울한 운명은 진수식 때 이미 예고됐다.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늘어선 가운데 열린 진수식 당시 무사귀환을 비는 병을 깨는 의식이 보기 좋게 실패했다. 이 때부터 선원들 사이에는 베이치모를 둘러싼 불길한 소문이 돌았다.
우여곡절 끝에 출항한 베이치모는 당시로선 보기 드문 최신식 화물선이었다. 길이가 70.15m에 이르고 삼단팽창식 증기엔진을 갖춰 속도 10노트로 항해할 수 있었다.
독일을 대표하는 화물선이던 베이치모는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함부르크와 스웨덴을 오가는 무역선으로 활약했다. 종전 뒤에는 승전국인 영국에 보상으로 인도됐고, 1921년 영국 국책 무역회사 허드슨 베이에 팔리면서 이름이 앵거마넬펜에서 베이치모로 변경됐다.
국적과 선주가 바뀐 베이치모는 전보다 명성을 얻었다. 값비싼 모피와 가죽을 잔뜩 싣고 바다를 누볐다. 허드슨 베이 사는 베이치모 덕에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1931년 10월 1일 캐나다 밴쿠버 빅토리아섬 해상에서 뜻하지 않게 빙해에 갇히면서 베이치모의 운명은 어둠 속으로 빠져버렸다. 소식이 알려지자 배를 만들었던 독일 기술자들 일부는 진수식 때 사고를 떠올렸다.
모피를 가득 싣고 있던 베이치모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혹독한 추위에 노출된 선원들은 연료가 바닥나자 배에서 나와 얼음 위를 걸어 탈출했다. 이틀이나 얼음판 위를 전진한 선원들은 천만다행으로 마을을 찾아 피신했다.
이후 기온이 올라 얼음이 녹자 선원들은 베이치모로 돌아갔다. 하지만 곧바로 눈보라가 치면서 시야가 제로까지 떨어졌다. 베이치모호는 그렇게 10월 8일 또 다시 얼어붙은 바다에 갇혔다.
허드슨 베이 사는 비행기를 동원해 선원 22명을 구조했다. 회사는 다시 얼음이 녹아 배가 풀려날 것을 대비, 선원 15명을 베이치모 인근에 움막을 짓고 대기하도록 했다.
11월 24일이 되자 엄청나게 매서운 눈보라가 다시 몰아쳤다. 남겨진 선원들은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도 베이치모를 회수하기 위해 버텼다. 날씨가 좋아져 밖으로 나온 선원들은 배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할 말을 잃었다.
눈보라와 폭풍우에 배가 산산조각 났다고 판단한 선장은 선원들과 비행기를 타고 회사로 복귀하려 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베이치모를 목격했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선원들은 목격자의 말을 토대로 추적을 개시했고 거짓말처럼 베이치모를 되찾았다.
이미 한겨울에 접어든 탓에 곧바로 배를 운항할 수 없었던 선원들은 값비싼 모피를 꺼내 비행기에 실었다. 선장은 끝까지 배를 포기할 수 없었지만 긴 겨울 베이치모가 온전히 바다에 떠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배를 버렸다.
버림받은 베이치모는 이후 홀로 바다 위를 떠돌았다. 이따금 사람들 앞에 출몰해 유령선으로 유명해졌다. 캄캄한 밤 달빛을 뒤로 하고 어디론가 향하는 베이치모는 무역선으로 활약하던 시절과 정반대로 음산했다. 선원들은 베이치모를 여러 차례 회수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베이치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1969년이다. 이로부터 52년째 발견되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 기록에 따르면 베이치모는 알래스카 북서부 추크치 해상에서 사람들 눈에 띈 뒤로 행방불명 상태다. 베이치모가 침몰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으나 이 배는 여전히 ‘북극해의 유령선’으로 불린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지난 2006년 사라진 베이치모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4000여 척의 선박을 동원해 수색에 나섰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베이치모는 무려 90년째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