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도 비디오게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퍼듀대학교 연구팀은 지난 12일 '프런티어즈 인 사이콜로지' 저널을 통해 '돼지의 조이스틱 작동 비디오 게임 습득(Acquisition of a Joystick-Operated Video Task by Pigs)'이라는 논문을 내고 이 같이 밝혔다.
연구팀은 돼지 네 마리가 주둥이로 조이스틱을 조작, 모니터 속 커서를 움직여 무작위로 할당된 1~3개의 벽에 닿게 할 때마다 보상을 주는 실험을 했다.
이를 수행하려면 돼지는 조이스틱을 움직이는 것과 모니터에서 벌어지는 일 사이의 연관성을 이해해야 했다. 또 화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보상을 받는 연관성도 깨달아야 했다.
실험 결과 돼지 네 마리 모두 벽이 하나일 때는 보상을 받는 데 성공했다. 횟수가 늘어날 수록 숙련도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는 손재주와 시각적 제약에도 돼지가 조이스틱으로 작동하는 비디오게임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나타낸다"고 밝혔다.
다만 2~3개의 벽에 모두 커서를 부딪힐 때만 보상이 주어지도록 난이도를 높이자 돼지들은 더 이상 성공하지 못했다. 앞서 이 실험을 수행한 원숭이 보다 떨어지는 결과다. 연구팀은 주둥이로 조이스틱 주위를 움직이는 것이 손가락을 사용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점, 돼지의 눈이 모니터를 계속 지켜보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 원숭이에 비해 돼지 지능이 떨어지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봤다.
연구 결과는 우리가 이미 돼지에 대해 알고있는 사실과 맞아 떨어진다. 돼지는 여러 종류의 복잡한 인지 테스트에서 놀라운 지능을 보여줬다. 예를 들어, 돼지는 다른 소리에 다르게 반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으며 공간 학습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반대로 돼지는 아주 간단해 보이는 일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간단한 기하하적 모형을 인식할 수 있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나 사진 속의 다른 돼지를 인식하지는 못한다. 돼지 보다 지능이 떨어진다고 여겨지는 양이나 소가 사진에서 다른 친구들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리송한 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실험은 왜 이뤄졌을까. 연구팀은 "기억이나 주의, 개념화와 같은 인지과정은 동물이 복잡하고 역동적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며 "관련 연구는 영장류나 쥐, 비둘기 등 실험실 동물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나 아직 농장 동물에서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실험은 단순히 돼지의 지능을 테스트하려는 의도가 아니며, 동물 인식 연구를 통한 '동물 복지'와 관계가 있다. 최근 식용으로 도축되는 농장 동물도 고통과 스트레스 없이 행복하게 살 권리를 주자는 동물복지가 강조되고 있다.
또 농장의 자동화와 방목에 따른 다른 동물과의 생활 공간 공유 등 사육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따라서 동물의 인지능력 파악은 물론 이를 통해 동물들이 새로운 생활환경에 잘 적응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농장 동물의 인지 테스트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영역이기 때문에 아직 연구할 과제가 많다. 연구팀은 "예컨대 닭은 지구상에서 인간이 가장 널리 키우는 동물이지만 닭의 인지 능력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다. 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똑똑해 보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은 "우리는 농장 동물에 사용됐던 관리 관행이 동물의 인지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며 "관련 연구가 발전하면 동물의 삶도 나아질 것"이라고 의의를 밝혔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