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매년 1000만건 이상의 맹장염이 발생하고, 최대 5만명이 이로 인해 사망한다. 미국 국립보건원에 따르면 20명 중 1명 꼴로 맹장염에 걸리며, 맹장 수술은 가장 흔한 복부 수술 중 하나다. 또 2011년 외과케이스보고 저널에 따르면 10만명 중 1명은 맹장이 없는 상태로 태어난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은 맹장이 나뭇잎을 먹은 선조의 흔적 기관으로 잠재적으로 음식을 소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간 진화와 식단 변화에 따라 맹장은 마치 꼬리뼈처럼 이제는 쓸모없는 기관이라고 추측했다.

그렇다면 사람 몸에서 맹장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서는 지난 2007년 미국 듀크대학교 의대 윌리엄 파커 교수의 연구가 큰 참고가 될 만하다.

파커 교수는 "다윈이 현재 맹장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가졌다면, 맹장이 가치없는 진화의 흔적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맹장이 음식을 소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유용한 장내 박테리아의 저장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이론생물학 저널'에 발표했다. 맹장에서는 장을 건강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박테리아가 나올 수 있다는 내용이다.

맹장 <사진=SciShow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Your Appendix Isn't Useless, After All' 캡처>

또한 맹장에는 고농도 림프 조직이 있다. 미국 미드웨스턴대학교 진화생물학자 헤더 스미스 교수에 따르면 이 조직은 림프구로 알려진 백혈구를 생성해 침입하는 세균에 대한 면역을 강화하는데, 맹장이 이런 면역 세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연구팀은 맹장은 사람뿐 아니라 포유류에서 적어도 8000만년 전부터 존재했으며 오랑우탄이나 코알라, 고슴도치, 비버, 오리너구리, 웜뱃 등에서 최소 32번이나 독립적으로 진화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스미스 교수는 "맹장이 있는 종들은 먹이가 비슷하지는 않지만, 맹장에 면역 조직을 있다는 점은 똑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연구팀은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 갑자기 맹장이 사라졌다면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물론 맹장이 없었다면 이를 대신할 면역 기능체가 진화했을 가능성은 있다. 현재의 경우 항생제가 있어 갑자기 맹장이 사라져도 끔찍한 상황은 피할 수 있다.

한편 맹장염의 원인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일부 과학자들은 현격하게 좋아진 위생상태와 산업화된 사회 등 생활환경의 변화가 맹장염과 연결돼 있다고 본다. 이런 변화가 우리의 체내 면역체계의 작동을 줄여, 그 결과 과거에 비해 맹장의 기능을 떨어뜨렸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과학자들은 맹장이 없다면 인간이 세균에 더 많이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맹장이 쓸모없는 기관이라는 생각 자체가 쓸모없다는 이야기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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