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는 어느 곳에나 DNA를 남기고 다닌다. 인간은 타액이나 피부 각질 등의 형태로 DNA를 남기는데, 이처럼 생명체가 외부로 배출하는 DNA를 '환경 DNA(environmental DNA, eDNA)'라고 부른다.

범죄 수사에서 DNA가 결정적 단서가 되듯, 과학 연구에서도 eDNA는 유용하다. 특히 물속에서 eDNA를 수집해 그곳에 사는 생명체를 파악하는 방법은 등장한지 10년 이상 됐으며, 최근에는 상당히 보편화됐다.

이번에는 사상 처음으로 공기 중에서 동물의 DNA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런던 퀸매리대학교 생태학자 엘리자베스 클레어 교수 등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피어제이(PeerJ)에 '공기 중 eDNA(eDNAir)'를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이들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동굴 속 동물들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팀은 실험에 벌거숭이두더지쥐를 동원했다. 두더지쥐가 든 상자와 이 상자들을 모아둔 방의 공기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여 필터에서 DNA를 추출, 염기서열을 해독했다. 그 결과 인간과 두더지쥐의 DNA를 모두 감지해냈다.

<사진=pixabay>

연구팀은 향후 이 기술을 이용, 동물을 일일히 추적하는 대신 튜브를 굴 속이나 동물의 거처에 집어넣고 공기를 빨아들여 많은 발견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동물에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도 멸종위기에 처한 종이나 희귀종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이번 연구 중 벌거숭이두더지쥐를 돌본 인간 DNA가 함께 발견된 점을 들어 향후 조사에서는 샘플이 연구팀의 DNA에 오염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클레어 교수는 밝혔다.

교수는 "이제는 eDNA가 공기를 타고 얼마나 멀리 이동할 수 있는지, eDNA를 감지할 수 있는 적당량의 공기 양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등을 연구하고 있다"며 "동물 eDNA 연구의 또 다른 중요한 단계는 실험실이 아닌 야외에서 DNA를 수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 대해 eDNA 전문가인 텍사스공과대학교 생태학자 매튜 반스 교수는 "상대적으로 큰 동물의 DNA가 공기 샘플에서 검출될 수 있다는 점은 eDNA 분석의 영역을 크게 넓힌 셈"이라고 말했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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