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대륙에 말과 당나귀가 처음으로 발을 디딘 것은 콜롬버스의 2차 신대륙 항해 때인 1493년이다. 이 두 동물은 아메리카의 식민지화에 필수적이었고 이후 수백년간 개척 시대를 통해 중요한 역할을 맡았지만, 19세기 골드러시가 끝나고 이후 자동차가 퍼져나가며 대부분 야생으로 풀려나갔다.
야생마는 그나마 무스탕(mustangs)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지만, 야생 당나귀는 그저 외부 침입종으로 토착종과 생존 경쟁을 벌이는 천덕꾸러기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야생 당나귀와 말이 생태계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덴마크의 오르후스대학의 생태학자 에릭 룬드그렌 교수 등 연구진은 2014년 우물을 파는 야생 당나귀를 처음으로 자세하게 관찰했다.
미국 남서부 건조기 동안 야생 당나귀와 말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먼지가 많은 땅을 파헤쳐 우물을 찾아내는 경우가 많다. 연구진은 아프리카에서 코끼리가 만든 우물이 사바나의 다른 동물들에도 유용하게 사용되는 것처럼 당나귀의 우물이 주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했다.
2015~2018년 동안 애리조나주 소노란 사막의 4개 지역을 관찰한 결과 온도가 오르고 하천이 말라붙은 지역에서는 야생 당나귀가 파놓은 우물은 유일한 식수 공급원이 됐다. 또 하천이 완전히 말라붙지 않은 경우에도 우물은 이용 가능한 물의 최대 74%를 제공했는데, 이는 우물이 강보다 동물들의 이동 거리를 평균 843m나 줄였기 때문이다.
또 연구진은 카메라를 설치해 우물을 찾은 동물들을 관찰했는데, 우물을 파자마자 새부터 퓨마, 심지어는 흑곰까지 57종의 동물이 몰려들었다. 이는 건조 지역보다 64%나 많은 동물의 종 수다. 룬드그렌 교수는 "우물은 다른 수원보다 시원하고 깨끗하다"고 밝혔다.
우물은 미루나무 성장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지역의 미루나무는 홍수 기간 중 수분을 흡수해 성장하는데, 특히 이 지역은 댐의 건설로 홍수가 사라지고 있어, 당나귀 우물이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연구는 당나귀 우물이 주변 환경에 미치는 장점만 밝혔지만, 모든 야생 당나귀와 말들이 생태계에 좋다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와이오밍대학의 생태학자인 제프리 벡은 "이전 연구에서는 말들이 우물에 몰려드는 영양 등을 내쫓는 것도 목격됐다"며 "당나귀 우물의 장점은 해당 지역으로 제한될 수 있다고"고 말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야생 당나귀가 무조건 나쁘다는 편견을 깨뜨리길 희망하고 있다. 연구 저자인 시드니공대의 생태학자 아리안 월러스는 "일부 지역에서는 야생 당나귀 등이 '자연정화'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있다"며 "당나귀와 말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들을 박멸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생태계 전체에 불행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지난달 30일 사이언스 저널에 게재됐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