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사무직에 종사한 고대 이집트 서기들의 뼈에서 직업병의 흔적이 확인됐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체코 카렐대학교 고고학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의 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기원전 2700~2180년 이집트 고왕국 시절 아부시르에 묻힌 성인 남성 69명의 뼈를 조사했다. 아부시르는 카이로 남쪽에 위치한 유적으로 파라오들의 피라미드와 장제전 사이에 자리한다.
이 과정에서 연구팀은 4000여 년 전 매장된 고대 이집트 서기들의 목과 어깨, 턱, 손목, 발목, 무릎 등 관절에서 심한 염증 흔적을 발견했다.
조사 관계자는 "우리 연구는 고대 이집트 서기가 장시간 책상다리 자세를 하거나 펜을 들고 뭔가 기록하면서 심한 관절염에 시달렸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과거 사람들도 현대인처럼 퇴행성관절염을 경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놀라운 것은 아부시르의 서기들 중 상당수가 턱관절이 상했다는 사실"이라며 "서기는 쐐기풀로 만든 붓 같은 펜을 썼는데 끝이 너덜너덜해지면 잘라내고 이로 물어 새로운 펜촉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일강 유역에서 수천 년 동안 번성한 이집트 문명을 지탱한 것은 읽고 쓸 줄 아는 관리들이었다.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관리들의 지시는 절대적이었다.
조사 관계자는 "이런 사람들이 나라의 행정을 떠받치고 있었고, 이들을 쫓아다니며 기록하는 서기들은 아마 밤낮없이 일했을 것"이라며 "오른쪽 쇄골, 어깨, 엄지손가락뼈의 이상은 뭔가 부단하게 기록한 영향이며, 발목과 허벅지 뼈가 납작해진 것은 오랜 시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고대 이집트 문자하면 신전이나 무덤 벽에 새기는 복잡한 히에로글리프(신성문자)를 떠올릴 법하지만 서기가 쓴 것은 신관문자"라며 "신관문자는 일종의 필기체로 히에로글리프보다 더 효율적이며 실용적이었다"고 말했다.
고대 이집트 서기의 사회적 계급은 병사와 거의 동등하며 장인이나 상인, 일반 시민보다는 위, 신관이나 귀족보다는 아래에 해당했다. 서기는 오직 남자뿐이었고,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잇는 경우도 많았다.
조사 관계자는 "고대 이집트 그림에는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거나 무릎을 꿇은 서기를 종종 볼 수 있다"며 "이따금 서서 일하는 서기의 조각과 그림도 있는데, 대부분 밭에서 수확량을 기록하거나 곡물의 양을 조사하는 상황으로 생각된다"고 언급했다.
일부 학자는 이번 연구에 반론도 제기했다. 아부시르의 무덤에서 발견된 남성의 뼈 중 서기라고 특정할 만한 인물은 단 6명으로 표본이 너무 적다는 지적도 나왔다. 턱관절이 붓 때문에 망가졌다면 치아에도 같은 흔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