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길들여진 여우의 뇌가 야생 여우보다 크다는 실험결과가 나왔다. 개나 고양이, 돼지 등 가축화된 동물의 뇌가 야생 개체보다 작은 것과 정반대 결과여서 학계 관심이 집중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진화생물학자 에린 헤흐트 조교수는 14일 국제신경과학저널 ‘JOURNAL OF NEUROSCIENCE’에 게재한 논문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발표했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1958년부터 야생 여우와 인간이 길들인 여우를 비교 분석해온 러시아 연구시설의 도움을 받았다. 이 시설은 늑대가 개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비밀을 밝히기 위해 늑대와 여우 등 개과 동물들을 전문적으로 사육해 왔다.

길들여진 여우 <사진=pixabay>

이곳 학자들은 선별교배를 통해 개와 같은 순종적이고 붙임성 있거나 공격성은 유지하면서도 야생 여우와 행동 패턴이 다른 새로운 개체들을 만들어냈다.

하버드대 연구팀은 이렇게 길러진 여우들이 당연히 야생 개체보다 뇌가 작을 것으로 여겼다. 러시아 연구시설 도움으로 잘 길들여진 여우와 공격성을 유지하며 교배된 여우, 야생 여우의 뇌를 각각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를 통해 살핀 결과 사람 손을 탄 여우들의 뇌가 야생종보다 컸다.

에린 헤흐트 교수는 “선별교배된 여우들은 뇌 전체와 회백질, 소뇌, 편도체, 전두전피질, 해마 등이 죄다 컸다”며 “인간의 손에 사육된 여우의 뇌가 100세대도 안 돼 빠르게 변화한 것은 동물 신경계가 상상보다 신속하게 재편되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사육된 여우들의 뇌가 야생종보다 큰 정확한 이유는 현재 밝혀내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가축화된 동물들은 야생종보다 뇌가 작고 대뇌피질도 얇다. 젖이나 고기의 소비 대상이거나 반려 목적으로 키워지면서 공포나 공격성, 불안감을 조절하는 뇌 부위가 작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편도체는 공격성이나 감정, 불안을 관장하는 뇌의 중요한 영역이다.

1만5000년 전부터 가축화된 개. 뇌 크기가 야생견 대비 29% 작다. <사진=pixabay>

러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 따르면 사람 손에 자란 개와 고양이, 양은 야생종보다 뇌 크기가 평균적으로 각각 29%, 25%, 24% 작다. 돼지의 경우 34%나 차이를 보인다. 심지어 야생종보다 2배나 뇌가 작아진 종도 있다.

연구팀은 여우들이 단순하게 사육된 게 아니라 미로나 장난감 등을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야생종보다 대뇌피질이 두꺼워진 것으로 추측했다. 일정한 교육을 받으면서 뇌 크기 역시 커진 것으로 에린 헤흐트 교수는 보고 있다.

교수는 “이번 실험결과는 야생 또는 사육된 동물들의 뇌 구성 차이에 대한 기존 학설을 수정할 필요성을 보여준다”며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의 뇌가 급격한 환경 변화 등을 겪어오며 형태학적 진화를 거쳤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연구결과를 분석하면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는 과정이 뇌 크기나 조성에 주는 영향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진화를 거듭했는지 단서를 얻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스푸트니크 네이버포스트 바로가기
⇨스푸트니크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