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고문으로 유명한 점성술사 겸 수학자 존 디가 애용했던 손거울이 아스텍 문명의 유산으로 밝혀졌다. 존 디의 거울은 엘리자베스 1세 통치 시절 유럽의 점성술을 상징하는 ‘영시의 거울’로 이름을 떨쳤다.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고고학 연구팀은 최근 발표한 논문을 통해 존 디가 항상 지니고 다녔던 영시 거울(Spirit Mirror)이 아스텍 제국 시절 만들어진 물건이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존 디가 영혼을 부르는 데 사용한 영시 거울의 원료가 흑요석인 점에 주목했다. 멕시코 각지에 흑요석 산지가 많아 거울이 14~16세기 인디오 아스텍 문명의 산물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 문명이 융성할 무렵 각종 공예품들이 존 디가 살던 유럽에 활발하게 전파됐기 때문이다.

작자 미상의 존 디 초상화 <사진=옥스퍼드 애시몰린 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존 디의 영시 거울과 같은 시기 영국에 전파된 직사각형 흑요석 거울 한 점과 원형 거울 두 점을 X레이 형광분석기로 조사했다. 이후 멕시코 각지에서 채굴되는 흑요석의 성분과 대조했다.

연구팀 관계자는 “흑요석은 특정 화산지역에서만 나는 광물로 대부분 각각 고유한 화학조성을 갖는다”며 “존 디의 영시 거울과 멕시코 아스텍 문명 발원 지역 흑요석의 화학조성이 일치하면 산지도 같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조사 결과 X레이 형광분석기로 들여다본 거울들은 멕시코 중앙부 파추카 지역의 흑요석과 화학조성이 일치했다. 이곳은 과거 아스텍 제국이 개발한 흑요석 산지가 분포한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존 디의 흑요석 거울. 지름 185㎜, 두께 13㎜, 무게 882g이다. <사진=대영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아스텍은 1428~1521년 멕시코 중앙부에 번성했던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고대 국가다. 융성한 기간은 짧으나 독특한 양식의 예술과 건축물을 남겼고 심장을 적출해 사람을 바치는 인신공양 및 카니발리즘(식인문화)으로도 유명하다.

아스텍 사람들은 사방에 널린 흑요석을 요긴하게 사용했다. 전쟁을 위한 창이나 화살에 철 대신 흑요석을 썼고 거울이나 장신구 등 가공품도 발달했다.

특히 존 디가 지녔던 종류의 거울들은 미래를 들여다보는 창으로 통했다. 아스텍 문명 최고의 신 테스카틀리포카(Tezcatlipoca, 연기를 뿜는 거울이라는 의미)와 결부된 도구로 소중하게 다뤄졌다. 피필틴 같은 고위층이나 제사장들만 이 거울을 사용할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 1세와 귀족들에게 연금술을 선보이는 존 디. 헨리 길라드 글린도니 작품이다. <사진=영국 웰컴 라이브러리 공식 홈페이지>

연구팀 관계자는 “아스텍의 흑요석 거울은 미래나 영혼을 들여다본다는 전설과 함께 유럽에 전파됐다”며 “점성술과 연금술을 탐미한 존 디로서는 자신을 어필할 아주 요긴한 물건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록에는 존 디가 흑요석 거울로 영혼이나 정령을 소환하는 의식을 치렀다고 나와 있다. 원래 존 디는 1558년부터 1570년대까지 엘리자베스 1세의 고문으로 국정에 깊이 관여했다. 배를 통한 식민지 확장을 권유해 항해술 발달에도 기여했다.

다만 얼마 안 가 마술이나 점성술에 심취하면서 오컬티스트로 변모했다. 대천사 우리엘이 선물했다며 보라색 수정을 들고 다녔고 아스텍 문명의 흑요석 거울로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본다고 주장했다. 결국 독실한 기독교인인 제임스 1세가 즉위하고부터는 명성이 하락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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