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닥칠지 모를 인류 문명의 붕괴에 대비, 지구 멸망의 원인들을 기록·보존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와 현지 마케팅 업체 클레멘저 BBDO(Clemenger BBDO), 크리에이티브 집단 글루 소사이어티(The Glue Society)는 인류 멸망의 원인들을 파괴되지 않는 거대 모노리스에 저장하는 ‘어스 블랙박스(Earth's Black Box)’ 프로젝트를 최근 발족했다.
‘어스 블랙박스’는 인류 문명이 일련의 사태로 붕괴될 경우 지구 역사에 무엇이 남는지 의문에서 출발했다. 과학발전의 흔적이나 테크놀로지의 잔재를 보여주기보다는 인류가 지금까지 어떤 것을 이뤄냈는지, 특히 무엇이 원인이 돼 멸망했는지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들을 담는다.
프로젝트에 동원될 모노리스는 비행기 추락에 대비해 데이터를 기록하는 블랙박스 역할을 한다. 만에 하나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그간의 상황을 후세에 전해주기 위한 데이터 스토리지인 셈이다.
‘어스 블랙박스’ 관계자는 “현대 문명이 멸망하면 아마 큰 도시의 일부나 유물은 100년, 아니 1000년 후에도 남아 있을 것”이라면서도 “운 좋게 후손들이 그것을 발견하더라도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문명의 발전보다 지금껏 인류가 무슨 일을 저질러 왔으며, 이로 인해 지구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알려주려 한다”며 “이를 후대가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멸망은 그저 헛수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지구의 파괴를 초래한 각종 원인들을 모을 계획이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분포 및 해수의 온도 변화, 각국의 에너지 소비량 추이, 야생동물의 멸종 과정 등 각종 데이터와 주요 정치인의 발언, 관련 뉴스, SNS 글 등 서로 연관되는 정보를 모노리스에 채운다.
웬만해서는 파괴되지 않는 강철제의 모노리스는 2022년 초 완성을 목표로 제작된다. 가로 10m, 세로 4m, 폭 3m의 길쭉한 형태로 호주 태즈메이니아 섬의 거대한 화강암 지대에 한쪽만 고정된 형태로 설치된다. 태양 전지판을 통해 데이터 스토리지에 전원을 공급하며 인터넷에도 접속된다.
완성까지 몇 개월 남았지만 기록은 이미 시작됐다. 프로젝트 관계자는 “지난 10~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기준으로 지구 멸망과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 중”이라고 전했다.
정보를 전달하는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후손들이 모노리스 속 정보에 접근할 다양한 유형의 인코딩 방식을 현재 고안 중”이라며 “상형문자를 비로소 해독하게 만들어준 로제타석처럼 미래 사람들에게 결정적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