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0년 전 미국에 도입된 유연휘발유가 어린이들의 지능 지수(IQ)를 크게 떨어뜨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듀크대학교와 플로리다주립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최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1920년대부터 사용된 유연휘발유 배기가스가 어린이 IQ를 총 8억 포인트 이상 저하시켰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차량 엔진 컨디션을 유지하고 노킹을 줄일 목적으로 납을 첨가한 유연휘발유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조사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미국이 유연휘발유를 정식으로 소비자들에게 공급한 것은 1923년으로, 인체에 나쁘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면서 1996년에야 판매가 중단됐다.
이번 연구는 일반에 공개된 어린이의 납 혈중 농도와 유연휘발유 소비량, 인구 통계 자료를 토대로 진행됐다. 2015년을 기준으로 생존한 미국인이 납에 노출된 결과 IQ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정했다.
그 결과 어린 시절 혈중 납 농도가 의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수준이던 노인은 무려 1억7000만 명이었다. 이는 현재 미국 인구의 절반을 넘는 수준이다.
연구팀은 1996년 이전에 태어난 미국인들은 뇌 노화가 평균보다 빠른 등 납으로 인한 건강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연휘발유 사용량이 정점을 찍은 1960~1970년대 태어난 현재 40~60대가 가장 피해를 많이 본 것으로 파악했다.
조사 관계자는 "납에 노출된 어린이의 IQ 하락치를 미국인 전체로 따지면 8억2400만 포인트(p)나 된다"며 "이는 1인당 평균 3%p 하락에 해당하며, 1960년대 중후반 출생자는 최대 6%p나 떨어졌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래 경계선 지능(IQ85 미만)이던 어린이가 지적 장애(IQ70 미만) 수준까지 지능이 떨어질 수 있는 심각한 현상"이라며 "어린 시절 혈중 납 농도가 가장 높았던 사람들은 의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현재 기준보다 8배의 납을 흡입했고, 이로 인해 IQ가 더 덜어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납에 노출된 어린이들의 IQ가 낮아졌을 뿐 아니라 장기적인 건강 문제, 일테면 뇌 위축과 정신질환 위험 증대, 심혈관계 질환 증가 등을 겪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납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사용되지만 뇌세포를 침식하는 맹독 물질이기도 하다. 신경에 작용하는 독성이 있어 체내에 쌓이면 뇌세포를 침식할 위험이 있다. 특히 어린이가 납에 취약하며, 장기간 노출되면 뇌 발달이 저해돼 지능이 떨어질 수 있다.
연구팀 관계자는 "유연휘발유 배기가스를 분진과 함께 들이마시거나 휘발유가 섞인 물을 마시면 납이 혈액으로 흘러 들어간다"며 "뇌에는 혈중 독소나 세균의 침입을 막는 일종의 필터가 있지만 납을 거르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납의 주요 인체 침입 경로 중 하나가 유연휘발유를 사용한 자동차의 배기가스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며 "오랜 세월 유연휘발유 사용이 인간에 끼친 악영향은 IQ 말고도 많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