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지렁이(블러드웜, 학명 Glycera dibranchiata)가 가진 금속성 송곳니가 인류 재료과학의 미래를 밝힐 열쇠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바버라캠퍼스 생화학 연구팀은 25일 국제학술지 'Matter'에 공개한 논문에서 송곳니 일부가 구리로 된 붉은지렁이에게서 놀라운 멀티태스킹(다기능) 단백질을 특정했다고 밝혔다.
붉은지렁이가 어떻게 금속 송곳니를 가지게 되는지 조사하던 연구팀은 복합소재로 된 송곳니를 만들어내는 다기능 단백질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를 힌트로 새로운 소재를 발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결론 내렸다.
날카로운 이빨 생성의 첫 단계는 단백질 전구체다. 구리와 단백질이 풍부한 액체가 모이면 그다음엔 구리를 촉매 삼아 아미노산 유도체 DOPA를 멜라닌 상태로 변환한다. 구리가 섞인 멜라닌은 다시 단백질과 결합되고, 이 과정에서 금속과 유사한 기계적인 송곳니가 탄생한다.

연구팀 관계자는 “글리신과 히스티딘을 주성분으로 하는 간단한 구성의 단백질이 이렇게 기능이 많은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이 멀티태스킹 단백질은 전혀 연관성이 없는 분야까지 영향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기능 단백질은 붉은지렁이가 송곳니를 키울 때 다양한 화학적 기능을 발휘한다”며 “이 단백질은 바다 퇴적물부터 흡수한 구리를 멜라닌과 섞은 뒤 가공해 치명적인 송곳니를 생성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글리세라속(Glycera) 환형동물인 붉은지렁이는 유연한 몸체 맨 앞에 위치한 입에 구리로 된 단단하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네 개 갖고 있다. 주둥이는 먹이활동을 할 때 몸체 앞으로 쭉 밀려나온다.

다 자라면 몸길이가 35㎝에 이르는 붉은지렁이는 가늘고 긴 몸을 해저 진흙 속에 숨기고 있다가 순식간에 먹이를 낚아챈다. 마비를 일으키는 독까지 갖고 있어 사람이 물릴 경우 따끔하다.
붉은지렁이의 송곳니는 10%가 구리다. 주성분은 단백질과 멜라닌이다. 구리와 멜라닌이 절묘하게 조합돼 송곳니 자체의 내마모성이 아주 뛰어나다. 덕분에 수명이 대략 5년인 붉은지렁이는 죽을 때까지 날카로운 송곳니를 사용할 수 있다.
연구팀은 붉은지렁이에서 관찰된 다기능 단백질이 지속 가능한 복합소재나 고분자화합물 소재 개발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다양한 소재 생산에 필수적인 처리 기술 자체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