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해 전혀 다른 종의 생물과 비슷하게 변화하는 '수렴 진화'가 학계 예상보다 훨씬 빈번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배스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커뮤니케이션즈 바이올로지(Communications Biology)'에 낸 논문에서 자연계의 수렴 진화는 학자들의 생각보다 훨씬 자주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수렴 진화란 전혀 관계없는 생물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같은 특징을 각각 독자적으로 발달, 결국 비슷하게 변모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을 통해 생성된 공통된 형질을 호모플래시(homoplasy)라고 한다.

연구팀은 생물학계가 형태학적 진화계통수(생물의 계통과 유연관계를 수상으로 표현한 것, phylogenetic tree)를 고집한 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형태학은 생물의 해부학적 특징을 단서로 하기에 외형이 비슷할 뿐 유전자가 전혀 다른 생물들을 제대로 분류하지 못한다. 연구팀은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수렴 진화의 실상을 다윈 이래 100년 이어진 형태학이 가려왔다고 의심했다.

대자연 속 생물들은 인간이 여겨온 것보다 훨씬 빈발하게 수렴 진화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진=pixabay>

배스대학교 진화고생물학자 매튜 윌스 교수는 “19세기 찰스 다윈과 학자들은 생물의 해부학적 특징과 구조에서 진화계통수를 가리려 했다”며 “이런 형태학과 달리, 현대 생물학자들은 같은 작업을 유전자 해석을 통해 행한다. 이 과정에서 근연종으로 여겨온 종이 전혀 다른 계통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형태학에 기반한 진화계통수와 유전자계통수(gene tree)를 아프리카 일부 생물의 지리적 분포에 대입해 비교했다. 그 결과 유전자 데이터에 기반한 분류가 생물 서식 지역과 잘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매튜 교수는 “100년 넘게 생물은 해부학적 외형에 따라 분류돼 왔지만 분자 데이터는 상당히 다른 히스토리를 품고 있었다”며 “자연계에서 수렴 진화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할 만큼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코끼리땃쥐. 형태학적으로 보면 쥐 같지만 유전자계통수로 보면 코끼리와 가깝다. <사진=pixabay>

교수는 “생물이 사는 곳, 즉 생물지리학은 다윈에게는 생물 진화의 중요한 증거였다”며 “코끼리땃쥐와 땅돼지, 황금두더지, 코끼리, 매너티는 외형도, 생활 방식도 전혀 다른 동물들인데 유전자 관점에서는 ‘아프리카수상목’이라는 포유류의 같은 그룹에 속해 있다”고 전했다.

즉 코끼리땃쥐는 형태학으로 따지면 쥐에 가깝지만 유전자 측면에서 보면 코끼리와 가족이다. 연구팀은 이런 사실로 미뤄 수렴 진화는 항상 일어나는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새와 박쥐와 곤충이 비행 능력을, 인간과 오징어가 카메라 같은 복잡한 눈을 진화시켰듯 수렴 진화는 앞으로도 빈발할 것으로 연구팀은 전망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가 생물의 지리적 분포에 진화 역사가 반영된다는 다윈 진화 이론의 오류를 정정함과 동시에, 어떤 생물이든 종을 파악하는 데 유전자계통수가 더 정확하다는 통계적 증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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