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천문학자 겸 수학자 히파르코스가 제작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체 목록이 마침내 발견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팀은 18일 국제 학술지 ‘Journal for the History of Astronomy’에 소개된 논문에서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 히파르코스가 제작한 '히파르코스 천체 목록(Hipparchus Star Catalog)’을 최초로 공개했다.

기원전 2세기 학자로 추정되는 히파르코스는 삼각법을 고안한 수학자이자 지구와 달의 거리를 계산한 기발한 천문학자였다. 그가 양피지에 기록한 고대 천체 목록은 천문학자들이 2000년 동안 찾아헤맨 희귀하고 귀중한 학술 자료이자 인류 유산이다.

연구를 이끈 케임브리지대학교 피터 윌리엄스 박사는 “‘히파르코스 천체 목록’은 천체의 정확한 위치를 고정 좌표로 기록하려는 인류 최초의 시도였다”며 “많은 고문서와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사라진 뒤 오랜 세월 문헌 속 기록에 의해서만 존재가 전해졌다”고 말했다.

멀티스펙트럼 스캔으로 드러난 히파르코스의 천체 목록(노란 글씨) <사진=Museum of the Bible 공식 홈페이지>

이어 “이 천체 목록은 실존하지 않는다는 학자도 있을 정도로 전설이 돼 버린 지 오래였다”며 “최근 재활용 양피지로 제작된 중세 기독교 서적 ‘Codex Climaci Rescriptus’에서 기적적으로 그 사본이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미국 워싱턴 ‘성서 박물관(Museum of the Bible)’이 소장한 해당 서적은 10~11세기 아람어 방언으로 기록된 사본이다. 이집트 시나이반도의 그리스 정교회 성 카탈리나 수도원에서 발견된 책인데, 당시 양피지가 상당히 비싸 서적 대부분은 문자를 지우고 다른 내용을 덮어쓰는 식으로 재사용됐다.

2012년부터 이 서적을 조사한 피터 윌리엄스 박사는 기원전 3~2세기 그리스 천문학자 에라토스테네스의 것으로 알려진 그리스어 구절을 발견됐다. 당시 이 사본의 진짜 가치를 몰랐던 연구팀은 2020년 멀티 스펙트럼 스캔을 통해 고대 별의 좌표 기록이 지워진 흔적을 눈치챘다.

분석 결과 지워진 문서는 히파르코스가 만든 천체 목록으로 판명됐다. 행성이 자전할 때 그 축이 약간 흔들리는(세차운동) 관계로, 별이 보이는 방법은 75년마다 어긋난다. 즉 별의 위치가 아주 오래됐더라도 역산하면 관측된 시대를 특정할 수 있다. 이를 응용해 조사한 결과, 좌표들은 히파르코스가 살았던 기원전 129년 밤하늘과 일치했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천문학자 히파르코스는 밤하늘 별들의 좌표를 기록한 천체 목록을 만들었다. <사진=pixabay>

피터 윌리엄스 박사는 “히파르코스의 별 좌표는 양피지를 재사용하던 당시 사람들 습관 때문에 덮어 씌워져 발견되지 않았다”며 “‘아라투스 라티누스(Aratus Latinus)’라는 또 다른 사본에는 ‘히파르코스 천체 목록’에서 직접 발췌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히파르코스의 천체 목록은 고대 그리스 시인 아라토스의 시집 중 유일하게 보존된 ‘파이노메나’의 주석으로 사용됐다. 주석을 적은 인물이 히파르코스가 직접 만든 천체 목록 원본을 입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히파르코스 천체 목록’은 가장 오래된 천체 목록으로 여겨져온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서 ‘알마게스트’보다 300년 먼저 제작됐다. 그러면서도 전문성이나 정확도는 ‘알마게스트’보다 뛰어나다.

피터 윌리엄스 박사는 “‘히파르코스 천체 목록’은 800개 넘는 별을 지름 등을 기준으로 구체적으로 분류했고 황위 등 좌표를 동원한 점에서 다른 천체 목록과 차별화된다”며 “전설적 유물이 실존하는 것으로 밝혀진 만큼 후대 천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서지우 기자 zeewoo@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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