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나 지능이 높은 동물뿐 아니라 꿀벌도 ‘놀이’를 즐길 줄 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퀸 메리 런던대학교 연구팀은 19일 동물행동학 저널 ‘Animal Behaviour’에 공개된 논문에서 꿀벌이 놀라운 인지 능력을 가졌으며, 사람처럼 놀이를 안다고 소개했다.
이 대학 연구팀은 전부터 곤충들이 다른 동물처럼 유흥을 즐기는지 실험을 거듭했다. 연구팀은 지난 2017년 유럽에 널리 서식하는 꿀벌과 곤충 서양뒤영벌(Bombus terrestris)이 축구를 학습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 연구팀은 벌들에게 보상을 줘가면서 나무로 된 작은 공을 골에 넣는 법을 가르쳤다. 이번에 연구팀은 과연 벌들이 어떤 보상이나 훈련 없이도 자발적으로 나무 공을 굴리며 노는지 관찰했다.
연구팀은 둥지와 먹이가 놓은 공간을 통로로 연결한 작은 실험실을 만들고 나이와 성별 태그를 붙인 서양뒤영벌 45마리를 넣었다. 통로 양쪽에는 노란색과 보라색 나무 공과 색칠하지 않은 나무 공을 9개씩 놓았다. 통로 자체에는 장애물이 없어 벌이 자유롭게 공과 접촉 가능하게 했다. 다만 통로 한쪽 공들은 바닥에 접착했고 반대쪽 공은 그대로 뒀다.
18일간 매일 3시간씩 진행된 실험 결과 벌들은 움직이는 공이 있는 곳을 즐겨 찾았다. 연구팀은 벌이 몸으로 공을 밀어 이리저리 굴리는 상황을 여러 차례 포착했다. 실험 기간 공을 한 번밖에 굴리지 않은 벌도 있었지만 하루에 44회 공을 만진 벌도 확인됐다. 실험 내내 벌 한 마리가 가장 많이 공을 굴린 횟수는 총 117회였다.
특히 연구팀은 공을 굴리는 동료들을 대기 장소에서 지켜보던 벌 중 일부가 별다른 이유나 보상 없이 공을 굴리는 점에 주목했다. 조사 관계자는 “벌이 여러 번 공을 굴린다는 것은 이 행동이 어떤 보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자발적으로 공을 굴리는 등 벌들이 보여준 행동은 동물의 놀이에 관한 다른 연구에서 관찰된 것과 거의 일치했다”고 전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수컷 벌이 암컷보다 더 오래 공을 가지고 놀았다. 이런 경향은 척추동물과 놀이에 관한 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성충이 된 지 3일 이내의 어린 벌이 10일 이상 넘은 벌보다 공을 굴리는 횟수가 많았는데, 이 역시 다른 동물의 놀이 연구 결과와 일치했다.
조사 관계자는 “어린 개체가 자주 노는 것은 자신들이 속한 생태계에서 생존할 준비를 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노는 동물은 인간만이 아니다. 지능이 뛰어난 침팬지나 범고래는 물론 개나 고양이, 도마뱀, 물고기, 새, 심지어 개구리도 놀 줄 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동물행동학자들은 동물의 놀이 기준은 많지만 외부 자극 없이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즉 동물의 어떤 행동을 ‘놀이’로 판단하려면 음식을 얻거나 피난처를 찾는 것, 짝짓기 등은 전혀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
연구팀은 이번 벌 실험에서 이 조건이 모두 충족됐다는 입장이다. 먹이를 주지 않았는데도 벌들이 공을 굴렸고 달콤한 보상을 요구하며 들러붙는 벌도 없었다. 심지어 먹이를 받아먹은 뒤 공을 굴리러 돌아오는 벌도 적잖았다. 자연의 벌들은 달콤한 보수를 이미 얻었거나 더 이상 취할 수 없게 된 꽃은 절대 다시 찾지 않는다.
조사 관계자는 “벌들은 어떤 보상도 없이 공을 굴렸다. 나무 공과 노는 동안 짝짓기를 위해 생식기를 보여주는 일도 없었다”며 “공을 사방팔방 무작위로 굴린 점에서 자신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청소하려는 의도도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서양뒤영벌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식물의 인공 수분에도 널리 이용되는 이 벌은 뛰어난 사회성을 지녔으며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한 인지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