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게놈) 편집 기술을 통해 외래종 쥐를 근절하는 시도가 세계 최초로 진행된다. 암컷을 불임 상태로 만드는 것이 핵심인데, 일각에서는 신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호주 애들레이드대학교 연구팀은 8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낸 논문에서 암컷 외래종 쥐를 불임으로 만들어 역병을 매개하는 쥐를 퇴치할 유전체 편집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t-크리스퍼(CRISPR)’로 명명된 이 프로그램은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를 구제하기 위해 개발됐다. 유전체 조작에 기반한 프로그램의 틀은 유지한 채 대상을 외래종 쥐에 맞췄다. ‘t-CRISPR’가 포유류에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크리스퍼는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의 줄임말이다.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잘라내 유전체를 교정하는 리보핵산 기반의 인공 제한효소다. 유전체 편집 기술인 3세대 유전자 가위로 잘 알려져 있다.
연구팀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유전체 변형 쥐를 250마리 준비하면 섬 하나에 서식하는 외래종 쥐 20만 마리를 20년 내에 박멸할 수 있다. ‘t-CRISPR’ 프로그램으로 유전체를 조작한 암컷 쥐들을 무리에 들여보내면 이 개체들에게서 태어난 암컷 쥐들은 두고두고 새끼를 낳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임 유전자가 충분히 확산되면 쥐의 개체 수는 점차 줄어들게 된다.
호주에 이런 방법이 도입된 이유는 쥐가 매개하는 전염병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연구팀 관계자는 “무려 150년 전부터 쥐로 인한 역병이 호주 사람들을 괴롭혀 왔다”며 “독약을 넣은 먹이 같은 구제법은 비인도적이며 비용과 노력 모두 많이 들고 효율도 낮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의 시도 역시 비인도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매우 높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더라도 유전체 편집 자체가 인간이 신의 영역에 들어가는 위험천만한 짓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이에 대해 연구팀 관계자는 “‘t-CRISPR’ 프로그램은 종래의 구제법과 달리 독을 쓰지 않아 환경이 오염될 우려가 없다”며 “노린 대상만 정확히 퇴치하는 데다 토종 쥐들에게는 불임 유전자가 전파되지 않아 이보다 나은 쥐 박멸 방법은 없다”고 역설했다.
연구팀은 윤리 논란을 의식, 실험실 내에서만 외래종 쥐 구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 환경에서 실험은 아직 실행 전이며, 미국처럼 자연을 완벽하게 모방한 시뮬레이션을 거쳐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