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으로 동료 4명을 살해한 전직 대학교수의 옥중 논문 발표를 둘러싼 논란이 3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천인공노할 범죄자의 논문은 폐기해야 마땅하다는 반대 의견 한편에는 인류를 이롭게 할 과학논문이라면 발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과학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을 위한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이 이슈의 주인공은 발레리 파브리칸트(82)다. 캐나다 컨커디어대학교 기계공학과 부교수였던 그는 연구를 둘러싸고 갈등하던 동료 4명을 총으로 살해하고 감옥에 갇힌 뒤 60편 가까운 과학논문을 써왔다.

구소련 출신인 발레리는 기계공학자로서 아주 우수했지만 성미가 급하고 까다로운 성격 탓에 툭하면 문제를 일으켰다. 직원들과 갈등으로 회사에서 해고된 그는 1979년 캐나다로 이주, 이듬해 퀘벡에 자리한 컨커디어대학교 기계공학과 부교수로 채용됐다.

조국을 떠나 겨우 잡은 삶의 터전이었지만 발레리는 여기서도 동료들과 마찰을 빚었다. 과학자로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자기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성격이 지탄을 받았고 학생들과도 불화를 빚었다.

동료 등 4명을 살해하고 옥중에서 60편 넘는 논문을 낸 전직 대학 부교수 발레리 파브리칸트. 언론들은 여전히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사진=캐나다 ICI 방송 유튜브 공식 채널 영상 캡처>

특히 발레리는 중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두 학자와 대립했다. 발레리는 이들의 이름을 모든 학술 논문에서 빼야 한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발레리는 법원에서도 괴팍한 언행과 안하무인 행동으로 법정모욕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학교에 신청했던 종신 재직 신청이 거부 당했고, 아예 대학 측은 그의 성격을 문제 삼아 해고를 통보했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눈이 뒤집힌 발레리는 1992년 8월 24일 오후 2시30분 권총 세 자루와 탄환을 서류 가방에 숨긴 뒤 기계공학과 사무실에 들어가 동료 4명을 살해하고 대학 직원 1명에 총상을 입혔다. 연구실 관계자 1명과 경비원 1명을 붙잡아 인질극까지 벌였다. 발레리와 갈등을 빚던 두 동료는 자리에 없어 화를 면했다.

법정에서 발레리는 일관되게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5개월에 걸친 심리 과정에서 변호사가 10명이나 바뀌었다. 정신감정 결과 발레리는 편집증이 있지만 형사상 책임능력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진단돼 종신형이 내려졌다.

권총 살인을 저지른 전직 대학교수의 옥중 논문 출판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약 30년이나 계속되고 있다. <사진=pixabay>

살인죄로 감옥에 갇힌 발레리는 옥중에서 수많은 과학논문을 썼다. 1996년부터 2021년까지 10개 넘는 국제 학술지에 60편 가까운 과학 논문을 발표했다. 1994년 9월 학술지에 투고한 콘크리트 균열의 수학적 해석은 1996년 1월 책으로 출간됐다.

발레리의 논문 저술에 학자들은 반대 의견을 냈다. 발레리가 몸담았던 컨커디어대학교 총장은 범죄자의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되는 데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발레리가 감옥에서 논문을 발표할 수 있다는 것이 의아할뿐더러 그의 행위는 누군가의 정당한 연구 성과 발표의 기회를 빼앗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몬트리올대학교 이브 긴그라스 교수는 지난 10월 31일 ‘Journal of Controversial Ideas’에 낸 기고에서 “개인의 범죄는 사회가 벌하는 것이지 과학적 성과의 타당성 판단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수는 “이번 이슈는 과학자의 연구 내용을 평가할 때 그 행동이나 사상도 포함할지 윤리적 딜레마를 부각시킨다”며 “논문 내용이 건전하면 출판돼야 마땅하며, 살인자의 논문을 폐기하는 것은 지식의 억압”이라고 강조했다.

서지우 기자 zeewoo@sptu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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