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레이저를 이용해 번개를 유도하는 실험이 성공을 거뒀다. 요란한 소리를 동반하는 번개는 자연적인 방전 현상이지만 통신탑 등 주요 시설에 피해를 주거나 화재 등 자연재해를 일으킬 수 있다.
스위스 제네바대학교 연구팀은 16일 국제 학술지 'Nature Photonics'에 소개된 논문에서 고출력 레이저 펄스로 번개를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번개는 공중에 존재하는 전기의 방전 현상으로, 구름과 대지 사이에서 번쩍이는 불꽃을 가리킨다. 간혹 천둥을 번개와 혼동하는데, 천둥은 번개로 인해 발생하는 소리다.
옛날 사람들은 들불이나 숲의 대규모 화재를 야기하는 번개를 막기 위해 고심했다. 연구팀 관계자는 "번개는 일면 거룩하지만 상당히 파괴적인 자연 현상"이라며 "삼림이나 임야 화재로 인한 피해는 물론, 매년 세계적으로 2만4000명이 사상할 정도로 인명 피해도 극심하다"고 설명했다.
1752년 미국의 발명가 겸 정치가 벤자민 프랭클린이 개발한 피뢰침은 번개를 임의로 끌어들여 지면으로 전류를 방출하는 획기적인 장치다. 약 270년이 지난 지금도 사용되지만 피뢰침의 효과 범위는 그 길이와 같을 정도로 한정적이다. 즉 피뢰침 길이가 10m라면 번개로부터 보호받는 범위는 반경 10m에 불과하다.
때문에 연구팀은 피뢰침을 보완할 보다 진보적인 번개 유도 시스템을 고민했다. 번개를 피뢰침보다 강하게 유도할 뭔가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1999년부터 연구를 거듭했다.
연구팀은 주요 시설물이나 민가에 번개가 떨어지지 않도록 유도하려면 금속 피뢰침을 뛰어넘는 강력한 뭔가가 필요하다고 봤다.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개발한 '레이저 라이트닝 로드'는 말 그대로 레이저 피뢰침으로, 강력한 레이저로 이온화된 공기 터널을 만들어 번개를 끌어들인다.
레이저는 금속제 피뢰침과 달리 하늘 멀리까지 도달할 수 있어 피뢰침의 가장 큰 단점인 길이 문제에서 자유롭다. 이는 그만큼 번개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는 의미다. 고출력 레이저 펄스를 대기에 쏠 경우 레이저 내에 강력한 빛의 필라멘트가 형성되는데, 공기에 포함된 질소 분자와 산소 분자를 이온화해 전자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이온화된 공기, 즉 플라즈마는 전기가 흐르기 쉽기 때문에 피뢰침 대용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한 레이저 펄스 장치를 연구팀은 해발 2502m의 스위스 샌티스 산 정상에 자리한 스위스콤 사의 통신탑 옆에 설치하고 테스트했다.
연구팀 관계자는 "이곳은 연중 꾸준히 번개가 치는 곳"이라며 "스위스콤이 소유한 통신탑은 무려 124m로, 레이저 펄스의 번개 유도 효과를 알아보기 위한 최적의 장소"라고 설명했다.
레이저 펄스 피뢰침은 초당 1000회 펄스를 발사했다. 2021년 6~9월 폭풍이 예보될 때마다 피뢰침의 효과를 측정했다. 레이저 피뢰침 옆에 설치한 카메라에 담긴 영상에는 레이저에 달라붙은 듯 떨어지는 낙뢰가 선명하게 찍혔다.
연구팀은 레이저 펄스 피뢰침이 번개를 효과적으로 유도할 뿐만 아니라, 번개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범위가 반경 120m에서 180m까지 넓어졌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팀 관계자는 "레이저 펄스 피뢰침은 악천후에도 제대로 작용하며, 고출력 레이저는 두꺼운 비구름을 뚫을 수 있고 산 정상에 늘 끼는 안개에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향후 레이저의 조사 고도를 500m까지 연장해 어지간한 번개는 모두 유도할 수 있는 차세대 피뢰침을 만들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