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골에 구멍을 내는 ‘천두술’이 중세 초기부터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발견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등 국제 연구팀은 23일 발표한 공동 논문에서 중세 초 유럽 사람의 두개골에 구멍을 내는 천두술을 시행했다고 주장했다. 이 내용은 국제 과학 전문지 ‘Phys.org’에도 소개됐다.

천두술은 현재 이뤄지는 머리 부분의 외과 수술법이다. 의학이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위험천만한 기술로 여겨졌다. 역사학자들은 다양한 조사와 발굴을 통해 천두술이 수 천년 전 시행된 원시 외과수술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구체적으로 천두술이 언제부터,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시작됐는지는 논란이 여전하다.

6~8세기 이탈리아 중부에 거주한 50대 여성의 두개골. 두 군데 뚜렷한 천두술 구멍을 비롯해 치아의 마모, 치주질환, 전두골 내측 비대 등이 확인됐다. <사진=케임브리지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연구팀은 6~8세기경 이탈리아 중부에 거주한 50대 여성 두개골을 조사하던 중 최소 두 차례 두개골에 구멍을 뚫은 흔적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 두개골이 천두술이 중세 초 이미 시행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여성 유골은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중부 롱고바드 공동묘지에서 발굴됐다. 상태가 온전한 총 19명의 유골 중 하나로, DNA 조사를 통해 6~8세기 사망한 50대 여성임이 드러났다.

두개골에 심상치 않은 흔적이 있다고 의심한 연구팀은 정밀 조사를 위해 CT 스캔을 실시했다. 두개골 표면을 닦고 건조한 뒤 흔적이 남은 부분에 푸른 실리콘을 도포했다. 그 위에 주황색 실리콘을 덧칠하고 에폭시 수지로 거푸집을 만들어 48시간에 걸쳐 건조했다. 거푸집 표면을 다시 금가루로 두른 뒤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분석, 두개골 구멍을 보다 면밀히 관찰했다.

두개골의 천두술 흔적을 면밀히 관찰하기 위해 실리콘을 덧칠하고 에폭시 수지로 거푸집을 만드는 과정 <사진=케임브리지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조사 관계자는 “두개골 중앙부에 타원형의 구멍이 나 있고, 그 밖에 동그랗게 깎여 나간 다른 구멍도 확인됐다”며 “여성은 치료 목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 천두술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롱고바드 공동묘지가 이탈리아 중부 카스텔 트로지노의 귀족 거주지 인근이라는 점, 그리고 시신들과 함께 황금과 값비싼 장신구가 무더기로 발견된 점에서 여성이 귀족이며 병을 치료하기 위해 외과수술을 받았다고 결론 내렸다.

조사 관계자는 “두개골 중앙의 십자 상처의 중심부 타원형은 천두술 흔적이 잘 치유됐다는 증거”라며 “아마 금속 수술기구로 정수리에 십자로 칼집을 내고 두개골에서 두피를 박리한 뒤 구멍을 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묘사한 중세의 천두술 <사진=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이어 “여성이 천두술을 여러 번 받은 것은 아마 갱년기 증상의 치료 때문일 것”이라며 “CT 스캔 결과 전두골 안쪽이 두꺼웠고 치주 질환 흔적도 역력했다. 치아는 심한 마모와 일부 결손도 드러났다. 이는 갱년기 여성의 주요 질병들”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천두술이 치료 이외의 목적으로 행해졌을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았다. 연구팀은 롱고바드 지역이 비잔틴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기에 당시 사람들이 의식 또는 형벌의 의미로 두개골에 구멍을 냈을지 모른다고 여지를 뒀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스푸트니크 네이버포스트 바로가기
⇨스푸트니크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