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약 5만4000년 전 이미 활과 화살을 사용한 새 증거가 발견됐다. 중기 구석기시대 유럽에 넘어온 호모 사피엔스가 주인공인데, 시대와 정착지를 공유한 네안데르탈인이 이 신무기를 사용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어 의문이 남았다.

프랑스와 미국 공동 연구팀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프랑스 론 계곡 만드린 동굴의 기원전 5만2000년 지층에서 고대인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활과 화살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유물들 가운데 날카롭게 갈아낸 작은 돌조각들에 주목했다. 돌조각들 가운데서 어린아이의 이가 발견된 점에서 여기에 고대인이 정착했고, 작은 돌들은 공격이나 방어, 사냥을 위한 화살촉으로 쓴 것으로 연구팀은 생각했다.

학자들은 이 돌 화살촉을 유럽에 넘어온 호모 사피엔스가 쓴 것으로 판단했다. 아직 네안데르탈인의 세력이 강했던 시대에 프랑스에 건너와 자리를 잡으려던 호모 사피엔스가 무기로 활과 화살촉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다.

프랑스 만드린 동굴 속 호모 사피엔스 유적에서 발굴된 돌조각 <사진=루도빅 슬리막 교수>

연구팀은 네안데르탈인의 터전임을 알면서 호모 사피엔스가 건너오게 된 계기 역시 활과 화살 기술의 습득으로 봤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이 무기는 호모 사피엔스의 인구가 놀라울 정도로 확대되는 바탕이 됐다는 가설인 이미 오래됐다.

돌조각들은 대부분 폭 1㎝ 전후로 작았다. 이를 분석한 연구팀은 만드린 동굴의 다른 층에서 발견된 칼날보다 세밀하고 날카롭게 만들어졌음을 확인했다. 돌들이 고대 화살촉임을 입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나무로 복제품을 만들고, 돌조각을 화살촉처럼 장착해 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이 화살이 무기로 충분히 활용됐을 것으로 결론 내렸다.

조사를 이끈 프랑스 툴루즈대학교 루도빅 슬리막 교수는 “돌들은 하나같이 고체 물체와 충돌에 의한 깨진 흠집이 끝부분에 나 있었다”며 “이런 충격에 의한 파손은 돌들이 물리적 힘에 의해 어디론가 날아가 부딪히거나 꽂혔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돌조각 크기는 다양했는데, 대부분 1㎝ 전후로 크지 않았다. <사진=루도빅 슬리막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동굴 내부의 호모 사피엔스 거주 영역에서는 화살촉 외에 나무나 동물 가죽, 섬유질 등 다른 화살 소재는 나오지 않았다. 이는 오랜 세월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소멸했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추측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동굴에 남은 네안데르탈인의 영역에서는 화살촉이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동굴 유적의 E층 위아래에서 네안데르탈인들이 사용한 도구와 유물이 발견됐지만 이들이 활과 화살을 사용한 증거는 없었다.

연구팀은 네안데르탈인들이 활과 화살 기술을 접했음에도 활용하지 않은 이유를 명확히 알아내지 못했다. 약 5만4000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서유럽 원정은 아주 짧은 기간 끝났기 때문에 네안데르탈인과의 접촉 역시 단기간에 이뤄졌고, 활이 전파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연구팀은 돌조각이 화살촉임을 입증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화살 끝에 장착하고 실험했다. <루도빅 슬리막 교수>

슬리막 교수는 “네안데르탈인도 활과 화살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를 무기로 택하지는 않은 듯하다”며 “그들만의 문화적 습관이 뿌리 깊었거나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앞섰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호모 사피엔스가 사라진 후 네안데르탈인이 만드린 동굴에 남겨진 활과 화살을 발견했더라도 사용법을 가르칠 이가 없었을 것”이라며 “이런 복잡한 도구들을 이해하고 만드는 데 필요한 인지적이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없었다는 일부 학자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고고학 및 인류학자들 사이에서 만드린 동굴은 인간 정착에 대한 가장 초기의 증거로 꼽힌다. 연구팀은 여기서 호모 사피엔스가 쓴 화살을 발견한 점, 그리고 만드린 동굴이 여러 시점에서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모두에게 맞춤형 안식처였다는 것을 확인한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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