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스러운 부장품으로 채워진 5000년 된 스페인 무덤의 주인은 남성이 아닌 최고위급 여성 통치자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는 8일 공식 채널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학계는 역사가 남성 권력자에 의해 구축돼 왔다는 고정관념을 깬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학 고고학 연구팀은 2008년 스페인 남부에서 발견된 5000년 전 무덤 속 부장품들에 주목했다. 호화로운 무덤에는 수정 단검을 비롯해 상아를 깎은 그릇이나 빗 등 값비싼 물건이 망자와 함께 잠들어 있었다.
고고학계는 무덤의 규모나 장식으로 미뤄 주인이 막강한 남성 권력가 내지 거상이라고 여겼다. 다만 최신 유전자 기술로 치아 에나멜의 DNA를 분석한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 연구팀은 여기 묻힌 인물이 최고위급 여성 통치자라고 결론 내렸다.
조사 관계자는 "유전자 분석으로 무덤 주인이 상아 상인(Ivory Merchant)에서 '상아 부인(Ivory Lady)'으로 바뀌었다"며 "아직 여성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5000년 전 스페인을 통치에 관여한 막강한 권력자임은 분명해 보인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발견은 고대 권력자가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개인의 자질과 능력, 업적, 인격에 기초해 뽑혔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라며 "남성만이 통치해 왔을 것으로 여겨졌던 고대 국가의 전체상이 바뀔 수도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상아 부인의 무덤은 기원전 2900~2650년 동기시대 조성됐다. 비교적 온전한 수정 단검, 도자기와 상아를 세공한 그릇, 접시, 빗이 합장된 상태로 출토됐다. 망자의 뼈 보존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조사 관계자는 "상아 부인의 무덤은 동기시대 어떤 묘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호화찬란하다"며 "이베리아반도 21개 유적에서 나온 동기시대 무덤은 총 1723개인데, 어느 것도 상아 부인의 안식처에 미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덤의 장식은 물론 동기시대 스페인에서는 보기 드문 단독 매장인 점도 상아 부인의 위상을 잘 나타낸다"며 "상아 부인이 매장된 후 250년에 걸쳐 주위에 새 묘지가 들어섰는데, 모든 무덤은 상아 부인의 묘에서 일정 간격을 떨어져 조성됐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이 고대 권력자나 부자는 모두 남성이라는 학계와 대중의 선입견을 깼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점에서 향후 역사나 고고학 조사에 임하는 학자들의 자세 역시 변화해야 마땅하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