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이 해제된 미 중앙정보국(CIA) 스파이 위성 사진들을 통해 숨어있던 고대 로마제국 성채들이 대량 발견됐다.
미국 다트머스대학교 고고학 연구팀은 28일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CIA 스파이 위성의 사진 분석 과정에서 고대 로마제국이 조성한 성채를 무려 400개가량 특정했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냉전시대 CIA가 소련과 중국을 정찰할 목적으로 발사한 코로나(Corona, 1960~1972) 위성 및 헥사곤(Hexagon, 1971~1986) 위성들이 찍은 사진을 장기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팀은 페르시아만 동부-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집트 서쪽에 이르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고대 로마시대 성채 396개를 새로 발견했다. 해당 지역에서는 지난 1934년 대규모 항공 조사에 의해 로마시대 성채 116개가 발굴된 바 있다.
조사 관계자는 "기밀문서로 다뤄졌던 사진들이 해금되면서 우리가 몰랐던 고대 로마시대 성채가 다수 확인됐다"며 "사진이 찍힌 지역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패권을 놓고 고대 로마제국이 아랍 유목민 및 페르시아 군대와 툭하면 충돌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과거 국경 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학자들은 추가로 파악된 성채들은 국경 방어보다는 로마 상인들의 활발한 교역을 보호하는 수단이었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조사 관계자는 "1934년 이곳을 탐사한 프랑스 고고학자들은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에 수백 개 지어진 로마 성채가 고대 이란 왕국 파르티아 및 사산조 페르시아를 막는 방어선이라고 여겼다"며 "CIA의 스파이 위성들이 찍은 사진은 이들의 가설이 잘못됐음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로마 성채가 동방의 적들을 막을 목적이었다면 남북에 집중 배치돼야 효율적"이라며 "성채들은 내륙 사막의 가장자리를 따라 동서로 이어지며, 전체적으로 티그리스 강가의 모술과 시리아 서부의 알레포를 연결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점에서 연구팀은 성채가 국경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교역을 위해 오가는 상인들의 안전을 지켰다고 봤다. 즉 성채들은 전쟁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나 다른 문화의 교류를 촉진했을 가능성이 있다.
조사 관계자는 "성채의 상당수는 2~6세기, 그러니까 고대 로마제국이 쇠퇴하고 패권이 동로마제국으로 옮겨간 때"라며 "성채는 수백 년에 걸쳐 사람이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고 개중에는 한 변의 길이가 200m에 달하는 거대한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해당 지역은 오랜 분쟁을 겪고 있어 지상 조사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국가가 관리하던 기밀이 일반에 공개되면서 역사적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위성들의 자료가 더 해금돼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고고학 및 역사학계는 최근 냉전시대 스파이 위성이 촬영한 영상이 해금되며 귀중한 발견이 이어지고 있다고 반겼다. 코로나 위성이 촬영한 이미지는 1995년부터 순차적으로 기밀 해제돼 중동 지역의 고고학적 이해를 도왔다. 헥사곤 위성 사진은 2020년 처음 기밀이 해제됐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