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니치 필사본(Voynich Manuscript)은 고도의 성의학 및 성행위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담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많은 학자들이 아직 비밀을 풀지 못한 이 고문서의 저자로는 바이에른 공국 의사 요하네스 하틀립(1410~1468)이 꼽혔다.
호주 맥쿼리대학교 언어학 연구팀은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1912년 이탈리아에서 발굴된 보이니치 필사본은 연대 측정 과정에서 15세기 것으로 밝혀졌다.
온통 미스터리한 그림과 암호 문자로 채워진 보이니치 필사본은 발견된 지 112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해독되지 않았다. 2018년 인공지능을 이용한 분석이 이뤄졌지만 이렇다 할 소득이 없었다. 영국 학자들은 2019년 이 문서가 원시 로마의 죽은 언어로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총 16첩 272쪽으로 구성되는 보이니치 필사본에 자주 등장하는 벌거벗은 여인 그림에 주목했다. 15세기 후기 유럽 학자들이 남긴 부인과 및 성의학 관련 서적 속 그림과 대조한 연구팀은 보이니치 필사본이 성관계 기술이나 성의학을 다뤘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또한 연구팀은 보이니치 필사본의 저자가 중세 후기 바이에른 공국 의사 요하네스 하틀립이라고 추측했다. 하틀립은 식물학, 여성학, 마법, 천문학, 성, 민간의학 등 다방면의 서적을 남겼다. 일단 그가 활동한 시기는 보이니치 필사본이 제작된 때와 대략 일치한다.
조사 관계자는 "하틀립은 피임이나 낙태 등 중세에 특히 민감했던 의료지식을 어떻게든 후대에 전하기 위해 암호 같은 알파벳 조합을 사용했다"며 "실제로 하틀립의 다른 기록에는 자신의 지식이 중세 성관념을 어지럽히고 신의 분노를 살 수 있다고 우려하는 대목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암호화되지 않은 하틀립의 책에는 출산 후 여성이 사용하는 연고나 성적 쾌락, 동물을 낳은 여성의 증언, 올바른 섹스의 자세, 성욕을 돋우는 식사, 피임이나 낙태에 사용하는 식물 정보가 담겼다"며 "유독 보이니치 필사본에 암호를 사용한 것은 이 책이 가장 자극적이고 많은 정보를 담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계에 따르면, 중세 후기 독일 및 이탈리아에서는 여성의 신체 비밀에 관한 책 자체가 철저한 검열을 받았다. 당시의 저작물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연구팀은 부인과나 성의학에 관한 기록을 죄다 암호화하거나 파기한 사례를 여럿 확인했다.
조사 관계자는 "이런 풍조와 하틀립의 방대한 지식을 감안하면 보이니치 필사본에는 아무래도 섹스의 비밀들이 담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향후 조사를 통해 보다 많은 정보를 얻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