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의 물을 말려버린 원인을 새로운 시각에서 찾아낸 학자들의 노력에 관심이 쏠렸다. 금성에서 물이 사라진 과정은 태양계 행성의 발생과 진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정보로 평가된다.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볼더(UCB) 및 애리조나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11일 금성에서 물이 마르는 과정을 새롭게 재구성한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이들의 보고서는 지난 6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먼저 소개됐다.

연구팀은 과거 풍부한 물이 존재했던 금성이 왜 건조한 행성이 돼버렸는지 고찰해 왔다. 많은 학자들은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금성 대기의 분자 이온에 매달려 왔는데, 연구팀은 HCO+에 특히 주목했다.

UCB 우주물리학자 마이클 채핀 연구원은 "우리 조사에서는 HCO+ 이온이 관여해 금성의 물이 지금까지 생각보다 2배 빨리 사라졌을 가능성이 떠올랐다"며 "금성의 물 증발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것은 이 행성이 오래 전에는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기 적합한 환경이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금성의 물은 분자이온 HCO+의 해리성 재결합 과정을 거치며 빠르게 사라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UCB 공식 홈페이지>

수성과 지구 사이에 자리한 금성에서 물이 사라진 이유는 오랫동안 학계의 수수께끼였다. 학자들은 탄생 직후의 금성이 태양과 너무 가까워 지표면이 뜨거워지면서 물이 빠르게 말랐다고 추측했다. 금성에 쏟아지는 대량의 태양광이 대기의 물을 수소원자와 산소원자로 분해, 가벼운 수소가 우주로 날아가 물을 생성할 재료가 사라진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마이클 채핀 연구원은 "금성은 수증기를 내뿜는 화산과 얼음 혜성의 충돌로 처음에는 많은 물을 가졌을 것"이라며 "이런 풍부한 수원 덕에 과거 금성에는 지표를 약 3㎞까지 덮는 물이 넘실댄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이어 "금성에서 물이 자취를 감춘 기존 가설은 여러 의문을 갖게 한다. 지금까지 수집된 금성 관측 정보로 따지면 수소원자가 빠르게 고갈됐더라도 이 행성에 약 100m 깊이의 물은 남아야 하는데, 현재 금성은 거의 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엄청난 양의 태양광과 온난화 등 기존 가설로는 금성의 현재 물 흔적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사진=pixabay>

연구팀은 금성의 물 증발 과정에 HCO+해리성 재결합이라는 또 다른 원인을 추가했다. 수소와 탄소, 산소 원자로 구성된 분자이온 HCO+는 성간운의 분자이온들 중 가장 풍부한 것으로 여겨진다.

마이클 채핀 연구원은 "양전하를 띤 수소와 탄소, 산소 원자가 음전하를 띤 전자와 결합해 일산화탄소와 수소를 만들면 여기서 생긴 수소는 우주로 달아난다"며 "수소는 물의 원천이므로 기존 가설보다 금성은 더욱 빨리 건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성 대기의 상부를 재현한 컴퓨터 모델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초기 금성에 존재한 물은 현재와 비슷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며 "즉 금성의 물은 HCO+ 해리성 재결합 과정으로 빠르게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NASA가 발사할 베리타스 궤도선의 상상도 <사진=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공식 홈페이지>

학계는 이번 연구가 금성의 생성과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금성 대기에서 HCO+가 검출된 적은 없지만, 이를 확인하는 시도 역시 없었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마이클 채핀 연구원은 "금성 대기의 HCO+를 만드는 각각의 소재는 이미 검출됐다"며 "향후 예정된 미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의 금성 탐사 계획에서 HCO+ 조사가 빠진 점은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NASA는 2028년 금성 지표면을 조사할 궤도선 베리스타(Veristas)를 발사할 예정이다. 2028~2030년에는 금성 탐사선 다빈치(Davinci)를 보내 대기 구성 물질을 관측한다. 유럽우주국(ESA)은 2032년경 금성 표면을 촬영하는 인비전(Envision) 미션을 앞뒀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스푸트니크 네이버포스트 바로가기
⇨스푸트니크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