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뇌에 자리한 공포 스위치를 과학자들이 발견했다. 불완전하지만 스위치를 강제로 끄는 방법도 알아내 향후 불안증 등 공포가 야기하는 질환의 치료가 활기를 띨 전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UCSD) 신경생물학 연구팀은 최근 공식 채널을 통해 뇌 속의 공포 작동 스위치를 특정했으며, 이를 임의로 활성·비활성화하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불안하고 불쾌한 감정이 밀려와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공포의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해 실험을 기획했다. 뇌 속 중요한 신경전달 물질 글루탐산 전용 수송체와 뇌세포 형광 단백질이 발광하도록 조작한 쥐를 준비하고 실험실로 옮겨 전기 충격을 줬다.
이후 쥐들은 실험실 밖 우리로 옮겨졌다가 2주 뒤 전기 충격을 받은 실험실로 돌아왔다. 연구팀은 뇌의 범화(특정 자극에 반응한 뒤 다른 자극에 똑같이 반응하는 현상)로 인해 전기 충격의 공포감을 느끼는 쥐들의 뇌를 들여다봤다.
이 과정에서 연구팀은 공포를 유발하는 스위치 같은 것을 발견하고, 이를 켜고 끌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UCSD 후이 콴 리 박사는 "쥐들은 전기 충격의 공포가 뇌의 범화로 떠오르면서 몸을 잔뜩 움츠렸다"며 "더 강한 전기 충격을 받은 쥐는 그 장소 이외의 곳에서도 몸을 떨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때 쥐의 뇌를 관찰했더니, 공포는 뇌간에 자리한 배측 봉선핵(dorsal raphe nucleus, DRN)이라는 영역이 원인이었다"며 "원래 이곳은 기분과 불안 조정을 관장하며 전뇌에 대량의 세로토닌을 공급한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강한 공포에 의해 신경세포의 스위치가 바뀌는 것도 확인했다. 신경세포의 의사소통 수단이 신경세포를 흥분시키는 글루탐산에서 억제 작용을 하는 감마-아미노뷰티르산(GABA)로 변화한 결과였다. 이 때문에 원래 사라져야 할 공포 반응이 유지되고 불안장애와 같은 증상이 지속된다고 연구팀은 결론 내렸다.
후이 콴 리 박사는 "사망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환자의 뇌에서도 글루탐산에서 GABA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었다"며 "감염성이 낮아 유전자 치료에 응용되는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AAV)를 주사해 GABA를 만드는 유전자를 억제하거나 항우울제 플루옥세틴을 공포를 느낀 즉시 투여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공포 스위치를 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두 방법을 시행한 쥐는 같은 전기 충격에 노출돼도 지나친 공포심을 갖지는 않았다. 다만 AVV를 이용한 예방법은 공포를 유발하는 스트레스를 사전에 감지할 필요가 있고, 플루옥세틴은 공포를 느낀 직후 투여해야 효과가 있었다.
후이 콴 리 박사는 "플루옥세틴 투여가 효과가 없는 것은 PTSD 환자에게 항우울제가 듣지 않는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일단 공포 스위치가 켜지면 약을 투여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라며 "두 방법 모두 완벽한 치료법은 아니지만 공포를 다스릴 중요한 힌트를 얻은 것은 분명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사는 "공포는 극도로 불쾌한 감정이지만 치명적인 위험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며, 정말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생존 확률을 높여준다"며 "다만 공포의 긍정적 작용은 한도가 있어 필요 이상으로 겁을 먹거나 사소한 일에도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면 일상생활이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