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폭발로 생지옥이 된 폼페이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뒷이야기에 주목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은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대규모 분화로 수많은 사람이 산 채로 화산쇄설류(화쇄류)에 파묻히는 아픔을 겪었다.

미국 마이애미대학교 고고학자 스티븐 턱 교수 연구팀은 최근 조사 보고서를 내고 폼페이 최후의 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해 살아간 삶의 기록들을 소개했다.

스티븐 교수는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로 발생한 화산재와 가스, 연기, 암석으로 이뤄진 화쇄류는 무려 시속 100㎞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을 덮쳤다"며 "수많은 사람들은 꼼짝도 못 하고 생활하던 그대로 생매장돼 버렸다"고 말했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추적한 연구에 관심이 집중됐다. <사진=pixabay>

이어 "일부 주민은 18시간 이상 지속된 분화에서 극적으로 탈출했고, 파괴된 도시를 대신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헤맸다"며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에서 도망친 생존자들의 흔적은 역사적인 화산 분화 후 사람들의 삶과 역사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이 찾아낸 기록은 여러 가지다. 이 과정에서 누메리우스 포피디우스, 아울루스 움브리시우스 등 탈출한 이들의 이름도 알아냈다. 생존자들이 모이거나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급히 마련된 인근 도시의 시설에 관한 이야기들도 들춰냈다.

스티븐 교수는 "벽에서 묘비까지 수만 개의 고대 로마시대 유물 데이터베이스를 8년간 조사한 결과 12개 도시에서 200명 이상의 생존자 증거를 뽑아냈다"며 "해당 자료들은 비교적 큰 피해를 입지 않은 베수비오 화산의 북쪽 지역에 집중됐다"고 언급했다.

79년 베수비오 분화로 피해를 입은 폼페이. 아직도 발굴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pixabay>

교수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 당시 생존자 중에는 새 공동체에서 오히려 번성한 이도 있다"며 "로마에서 약 28㎞ 떨어진 오스티아로 이주한 칼틸리우스 가족은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항구도시 포추올리로 피신한 또 다른 가족은 가업을 이어가며 대부호가 됐다"고 전했다.

물론 생존자 모두 새 공동체에 안착한 것은 아니다. 역시 포추올리로 이주한 파비아 세쿤디나라는 여성은 검투사와 혼인했지만 남편이 25세에 요절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아비아니, 아틸리, 마수리 등 가족들은 폼페이 동쪽 약 16㎞에 자리한 누체리아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경제난으로 고생했다.

스티븐 교수는 "생존자들의 기록을 보면, 당시 로마 황제가 이재민들을 위한 활동을 독려한 사실도 밝혀졌다"며 "황제는 분화 피해를 입은 토지를 재건하고 도로와 수도, 가옥 등 생활 인프라를 건설하는 데 많은 투자를 이어갔다"고 강조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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