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이 상으로 유명한 이스터 섬(라파 누이, Rapa Nui)의 문명이 붕괴한 이유는 인구 급증이 아니라는 주장이 또 제기됐다. 남태평양의 외딴섬 라파 누이는 최대 20m에 달하는 거대 인면상 모아이를 만들 정도로 고도의 문명을 구축했지만 인구가 지나치게 늘어 자멸했다고 여겨져 왔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 진화유전학자 빅토르 모레노 교수 연구팀은 11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낸 조사 보고서에서 라파 누이의 문명이 소멸한 원인은 인구 폭증이 아니라고 전했다.

라파 누이는 신비로운 모아이 상 하나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 명소다. 일찍이 이곳 문명을 조사한 학자들은 인구가 지나치게 늘어 숲 등 자원을 소진한 끝에 부족 간 다툼이 벌어져 문명이 소멸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모아이 상이 즐비한 라파 누이. 거대한 상을 어떻게 만들어 옮겼는지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사진=pixabay>

이 가설에 의문을 품은 연구팀은 1670~1950년 섬에 거주한 주민 15명의 유골을 분석했다. 각 게놈을 면밀히 조사한 연구팀은 유전적 다양성의 감소를 의미하는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유전적 다양성의 급격한 저하는 극적인 인구 감소를 뜻한다.

빅토르 교수는 "우리 실험 결과는 라파 누이 주민들이 인구 폭증으로 멸망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며 "유럽인이 섬에 도착한 18세기까지 인구는 안정적으로 유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흥미로운 점은 이스터 섬 주민의 게놈에는 남미 원주민의 유전적 특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라며 "둘의 혼혈은 1250년부터 1430년 사이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학자들은 라파 누이의 원주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자원 싸움을 벌인 끝에 문명이 붕괴했다고 여겨왔다. <사진=pixabay>

지금까지 학자들은 라파 누이의 혼혈이 유럽인이 섬을 방문한 1722년 이후 시작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번 연구는 콜럼버스가 북아메리카에 도달한 1492년보다 앞서 폴리네시아인들이 3700㎞나 떨어진 남미 대륙과 바다를 건너 교류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빅토르 교수는 강조했다.

폴리네시아 유인도에서 동쪽으로 2000㎞나 떨어진 고도 라파 누이는 아주 오래전 폴리네시아인들이 정착해 번영했다. 여기 세워진 모아이는 최대 1000개로 생각되며, 이를 토대로 학자들은 주민들이 한때 1만5000명 이상이었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지내다 보니 목재 등 자원을 둘러싼 부족 간 싸움이 심했고, 결국 17세기 문명 붕괴를 맞았다는 설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이런 가설을 반박한 주장은 지난 6월에도 나왔다. 미국 연구팀은 조사 보고서를 내고 이스터 섬 주민들의 농작물 경작 수준을 고려할 때 인구는 피크 시기를 고려해도 기껏해야 4000명 안팎이며, 자원을 둘러싼 경쟁은 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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