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말 케냐에서 건설 작업자 약 30명을 잡아먹은 일명 차보의 식인 사자는 아프리카물소의 감염병 때문에 인간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새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최근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차보의 식인 사자 사건을 일으킨 수사자 2마리는 아프리카물소의 우두(cowpox) 때문에 극도로 굶주리다 인간을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차보의 식인 사자 사건은 1898년 3월부터 12월까지 발생했다. 케냐 차보 강에서 열차용 다리를 건설하던 작업자 야영지에 수사자 2마리가 연속해서 침입해 최소 28명, 최대 35명을 물어 죽였다. 이들 사자는 마사이 종으로 수사자임에도 갈기가 없었다. 사자들은 같은 해 12월 현장 감독관 존 헨리 패터슨에 사살됐고 두개골 및 박제가 미국 시카고 필드박물관에 전시됐다.
연구팀은 두개골의 치아에 남은 동물들의 털을 채취해 DNA를 추출했다. 이를 면밀히 분석한 연구팀은 두 사자가 생전에 어떤 먹잇감을 주로 사냥했는지 들여다봤는데, 이전에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들이 일부 드러났다.
일리노이대 야생동물학자 알리다 드 플래밍 박사는 "9개월에 걸쳐 차례로 인간을 사냥해 노동자들을 공포에 떨게 한 차보의 식인 사자는 발톱과 이빨이 빠질 만큼 병들어 다른 동물보다 사냥이 손쉬운 인간을 노렸다"며 "미토콘드리아 DNA 해석에서 밝혀진 것은, 갈기가 없는 이 두 마리는 형제일 가능성이 높고 별명대로 확실하게 인간을 먹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사자들은 사람은 물론 기린, 얼룩말, 오릭스, 누, 물영양(워터벅)을 사냥했다"며 "이 사자들이 누를 먹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차보 국립공원 일대의 지형을 고려하면 누를 사냥하기 위해 90㎞는 족히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DNA 분석 결과가 맞는다면 차보의 식인 사자들은 당초 학자들의 생각과 달리 넓은 범위를 이동했을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1989년 식인 사건 이후 학자들은 희생자가 차보 국립공원 13㎞ 내에서 발견된 점에서 이들이 비교적 좁은 범위에 머물며 작업자들을 습격했다고 봤다.
알리다 박사는 "어느 생각이 맞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사자의 세력권은 좁으면 50㎢, 넓으면 1000㎢로 여겨지지만 사냥감이나 물이 부족할 때에는 더 멀리 이동한다"며 "우리 연구에서는 이 사자들이 아프리카물소는 잡아먹지 않은 점도 드러났다"고 언급했다.
박사는 "원래 아프리카물소는 사자들의 주된 식량인데 차보의 식인 사자들이 입에 대지 않은 이유는 바이러스가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당시 차보 지역의 동물들에게 우두라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이 퍼졌고 이 때문에 가축의 90%가 죽었다. 사자들은 아프리카물소의 감염 사실을 안 듯하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사자들이 아프리카물소를 사냥할 수 없게 되면서 극한까지 굶주렸고, 이 때문에 인간을 사냥해 먹은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알리다 박사는 "사실 두 사자의 이빨 분석에서 상당한 치통 때문에 큰 사냥감을 잡지 못했다는 기존 가설도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며 "만약 우두 때문에 차보의 식인 사자가 굶주렸다면 이들 입장에서 인간 공격은 필사적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