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유적에서 발굴된 특징적인 유골들이 품은 진실이 DNA 분석 결과 드러났다. 화산쇄설류(화쇄류)에 뒤덮인 희생자들의 DNA 분석이 극히 어렵다는 점에서 이번 성과는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탈리아 피렌체대학교와 미국 하버드대학교,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폼페이 유적의 일명 황금팔찌의 집(House of the golden bracelet) 등 특징적 유골들의 진상을 담은 DNA 분석 보고서를 7일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이탈리아 나폴리 근교의 고대 도시 폼페이는 79년 베수비오 화산 대폭발로 괴멸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밀어닥친 화쇄류에 묻혀 목숨을 잃었다. 19세기 폼페이 유적을 발견한 학자들은 시신이 부패하면서 화산재에 생긴 구멍에 석고를 흘려 넣고 석고상을 만들어 재난의 진상을 연구해 왔다.
연구팀은 화산재 속에 남은 희생자 일부의 뼛조각에 주목했다. 과거 학자들이 만든 석고상 86구에서 14구 분량의 뼛조각을 입수한 연구팀은 DNA를 어렵게 추출해 분석에 나섰다.
피렌체대학교 법의학자 엘레나 필리 박사는 "화산 폭발 시 발생하는 초고열과 화쇄류는 희생자들의 DNA가 장기 보존되는 데 악영향을 미친다"며 "희생자들의 뼛조각에서 DNA를 추출하는 것은 이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최신 기술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줬다"고 말했다.
박사는 "화쇄류가 쓸고 간 현장에 남은 14명의 뼈 중 DNA 해독이 가능했던 것은 6명뿐"이라며 "이들의 유전자가 극적으로 해독되면서 폼페이 최후의 날 진상 중 일부가 규명됐다"고 덧붙였다.
폼페이 유적 내부의 황금팔찌의 집에서는 총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한 명이 금팔찌를 착용한 데서 황금팔찌의 집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그간 학자들은 네 명이 한 가족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DNA 분석에서 유전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황금팔찌의 집만큼이나 유명한 서로 껴안은 유해의 진상도 드러났다. 학자들은 아이를 보호하려고 필사적으로 부둥켜안은 여성으로 여겼지만 둘은 남자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확인됐다.
엘레나 박사는 "고대 도시 폼페이는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고 심오한 사회였는지 모른다"며 "시간당 100㎞ 넘는 속도의 화쇄류가 사람들의 일상을 그대로 덮쳤다고 볼 때, 당시 가족의 형태나 젠더 의식에 대한 새로운 의문을 갖게 된다"고 언급했다.
그는 "희생자들의 기존 이야기는 그럴듯하지만 이번 유전자 분석 결과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음을 느꼈다"며 "유골들은 우리가 모르는 로마사회의 젠더 및 가족의 형태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함을 깨닫게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분석 대상이 된 사람들이 수 세기 동안 폼페이 주변에 살던 이들이 아니라 동지중해나 근동에서 온 이민자의 후손인 점도 주목했다. 이는 로마 전역에서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진행된 초기 세계화 정책의 영향일 것으로 연구팀은 추측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