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을사년을 맞아 뱀이 간지에 포함된 이유와 다양한 문화권의 설화에 관심이 쏠렸다. 뱀은 징그러운 외형 때문에 사람들이 꺼리지만 선인들은 생명과 부활, 지혜, 풍요의 상징으로 떠받들었다.
◼︎뱀은 어쩌다 간지에 포함됐나
간지의 기원에 관한 설은 여러 가지인데 중국 상나라 설이 유력하다. 파충류인 뱀이 12종류의 동물로 구성되는 간지에 선택된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다.
뱀을 나타내는 한자 사(巳)의 본래 의미는 '초목의 성장이 극에 달해 다음 생명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시기'다. 즉 탈피해 성장을 거듭하는 뱀의 생태에 주목한 선인들이 간지에 뱀을 포함한 것으로 생각된다.
뱀이 고대부터 풍요와 번영의 상징으로 통한 것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특히 농경사회에서는 뱀이 해충을 구제하는 익수로 인식됐기 때문에 간지에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요르문간드(Jormungandr)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요르문간드는 세상을 둘러싼 거대한 뱀이자 로키의 아이로 표현된다. 바다를 둘러싼 존재이며, 그 꼬리를 스스로 무는 형상이 영원이나 순환을 상징한다. 결국 요르문간드는 라그나로크(종말의 날)에 토르와 싸우다 서로 목숨을 잃는 운명이다.
◼︎우로보로스(Ouroboros)
우로보로스는 자신의 꼬리를 물어 고리 모양으로 된 뱀이나 용을 의미한다. 우로보로스 신화는 기원전 1600년 고대 이집트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양신 라를 수호하는 신 메헨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원을 형성해 지켜낸 일화에서 땄다.
이집트 문명의 이 상징물은 페니키아를 거쳐 고대 그리스로 전해져 우로보로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완전성과 영원, 순환을 상징하며 연금술과 종교, 철학 등 많은 문화와 사상에 적극 인용됐다.
◼︎나가(Naga)

인도 신화의 물을 관장하는 뱀신이다. 반은 인간, 반은 뱀 형상으로 물과 풍요를 관장하고 인간에 지혜를 준다. 특히 나가의 여성형 나기니(Nagini) 또는 나기(Nagi)는 왕족의 조상으로 존경을 받는다. 나가는 날씨를 좌우하는 힘을 가졌고 가뭄이나 홍수를 일으킨다고 생각된다.
◼︎야마타노오로치(八岐大蛇)
머리와 꼬리가 각 8개인 일본 신화의 거대한 뱀이다. 자연의 위협과 하천의 범람을 상징한다. 8은 고대에서 '많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로, 오로치의 거대함과 공포를 강조하기 위해 이름에 들어갔다.
일본 신 스사노오노미코토는 이즈모에서 오로치에게 딸을 바칠 운명인 노부부를 만난다. 의로운 스사노오는 노부부의 마지막 딸 쿠시나다히메를 구하려 나섰다. 스사노오는 오로치를 독한 술로 재운 뒤 검으로 내리쳤고, 꼬리에서 천총운검을 얻었다. 이 검은 훗날 아마테라스에 진상됐고 일본 삼종신기의 하나가 됐다.
◼︎쿠쿨칸(Kukulkan)

고대 마야인은 쿠쿨칸을 창조와 지혜를 관장하는 신으로 추앙했다. 온몸에 깃털을 두른 뱀신으로 과학이나 수학 등 갖은 지식을 사람들에게 전해준 것으로 묘사된다.
마야 유적 치첸 이트사의 피라미드에는 지상에 강림하는 쿠쿨칸을 묘사한 장대한 벽화와 조각이 여럿 존재한다. 학자들은 이를 통해 마야인들이 쿠쿨칸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로 떠받들었다고 본다.
◼︎헤카테(Hecate)
그리스 신화 속 마술과 밤, 달의 여신 헤카테는 경계와 미지의 영역을 지키는 존재다. 뱀은 헤카테의 상징이자 지령과 지혜, 신비로움을 의미하는 생물이다. 헤카테는 길을 보여주는 안내자로도 알려져 어둠 속에서 사람들을 이끌어준다.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의 지팡이

그리스 신화 속 아스클레피오스는 의료와 치유를 관장하는 신이다. 그를 상징하는 지팡이에는 뱀이 감겨 있다. 뱀은 낡은 껍질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에 생명의 재생, 치유를 상징한다.
뱀은 독을 가진 생물인데 이를 적절히 이용하면 약이 되는 것을 선인들도 알았다. 독과 약의 양면성은 아스클레피오스의 의료 철학과도 일치했다. 신화에서는 아스클레피오스가 환자를 치료할 때 뱀이 나타나 지혜를 줬다는 대목이 있다. 의사를 상징하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는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의사회(AMA)의 마크에도 들어갔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