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도에 따라 표정이 바뀌는 도자기 인형이 중남미 국가 엘살바도르에서 발굴됐다. 연대 측정 결과 약 24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폴란드 바르샤바대학교 고고학 연구팀은 7일 이런 내용을 담은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인형은 모두 5개로 넋이 나간 듯 허무한 얼굴이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표정이 극적으로 변해 학자들의 관심이 모였다.

조사를 이끈 얀 시만스키 교수는 “산 이시드로 유적의 피라미드에서 나온 도자기 인형들은 당시 사람들이 중요한 의식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인형들은 먼 옛날 엘살바도르가 학자들의 추측과 달리 개방적인 국가였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표정이 변화하는 도자기 인형이 엘살바도르 피라미드 유적에서 나왔다. <사진=바르샤바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도자기 인형은 여성을 본뜬 것이 넷, 남성이 하나다. 높이는 10~30㎝로 일정하지 않다. 큰 인형은 벌거벗었고 머리카락도 장식품도 없는 반면 작은 인형은 머리카락이나 귀걸이를 묘사했다. 대신 큰 인형은 목이 돌아가는 등 제한적이나마 동작이 가능하다.

인형들은 모두 허무한 표정이 특징이다. 다만 보는 각도에 따라 인상이 크게 달라진다. 예컨대 눈높이를 맞춰 보면 잔뜩 화난 표정이 되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활짝 웃는 것처럼 보인다.

시만스키 교수는 “일본 전통극 노가쿠에서 배우들이 쓰는 탈처럼 인형들은 시선의 각도에 따라 표정이 달라 보였다”며 “이는 우연이 아니라 제작자들이 의도한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인형들은 크기나 형태가 제각각이다. <사진=바르샤바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이어 “인형의 변화무쌍한 표정은 옛날 사람들이 행한 의식의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것”며 “의식을 돋보이게 할 퍼포먼스, 일테면 인형극에 사용해 모여든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장치”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산 이시드로 피라미드에서 배가 빈 다른 도자기 인형이 발견됐고, 놀랍게도 이번에 나온 인형이 딱 들어맞는다는 점에서 의식이 아기의 출산과 관련됐다고 추측했다.

시만스키 교수는 “인형들은 신화나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기 위한 극에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위대한 신이나 영웅의 탄생을 보여주는 의식에 쓰려고 구운 인형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연구팀은 배가 빈 도자기 인형에 쏙 들어가는 구조로 미뤄 출산을 보여주는 인형극을 떠올렸다. <사진=바르샤바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연구팀은 도자기 인형들이 제작된 것과 비슷한 시기의 인형이 10년 전 엘살바도르 인접국가 과테말라에서 나온 점에 주목했다. 오래전 해당 지역의 지배자들은 분명 연결고리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시만스키 교수는 “엘살바도르는 5, 6세기경 대규모 분화가 일어났고, 과거 유물 대부분이 손실돼 당시 역사가 불분명하다”며 “과거 엘살바도르는 고립된 국가였고 인근 지역과 교류가 없었다고 여겨졌지만 이번 발견은 이런 가설이 틀렸을 가능성을 제기한다”고 전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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