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대화하는 유인원으로 많은 매체에 소개됐던 보노보(피그미침팬지) 칸지가 이달 18일 눈을 감았다.
미국 아이오와 디모인에 자리한 유인원 보호·연구센터 ACCI는 24일 공식 SNS를 통해 오랜 시간 인간과 소통해 온 보노보 칸지가 44년 일생을 마감했다고 발표했다.
ACCI에 따르면, 칸지는 평소와 다름없이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오전 동안 동료와 어울려 다니며 즐겁게 놀았다. 오후 들어서는 조카뻘인 뇨타(25)와 볕에 누워 그루밍도 즐겼다. 다만 이후 갑자기 칸지가 움직이지 않았다. ACCI 직원들이 급히 달려왔을 때 이미 심장 박동이 멈춘 상태였다.

ACCI 관계자는 “재능이 풍부한 보노보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이곳 직원들과 학계 관계자들은 충격을 받았다”며 “칸지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다. 말을 이해했고 자발적으로 문장을 짜거나 불을 다뤘고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하는 등 유인원들의 상식을 뒤엎는 지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부검 결과가 나와야 확실한 사인을 알 수 있겠지만 심장병 치료를 받은 점이 걸린다”며 “정기적으로 심전도와 혈압 모니터링을 실시했음에도 죽음을 막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1980년 10월 28일 태어난 칸지는 조지아주립대학교 언어연구센터(LRC)에서 수 새비지 럼보(78) 박사가 길렀다. 영장류 연구센터에서 칸지와 양어머니 마타타를 LRC로 데려간 럼보 박사는 보노보와 사람이 어디까지 소통 가능한지 알아봤다.

박사는 발달장애 어린이들의 의사소통에 사용하는 렉시그램(lexigram)을 의사소통 실험에 동원했다. 마타타에게 음식을 의미하는 기호를 가르쳤는데, 이 무렵 아직 어렸던 칸지는 옆에서 놀기만 했다. 마타타의 훈련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2년 뒤 번식을 위해 영장류 연구센터로 일시적으로 이동했다.
마타타의 부재는 칸지가 훌륭하게 채웠다. 칸지는 배우지도 않은 렉시그램을 이용해 의사를 표현했고 놀란 럼보 박사는 무려 120회 이상의 의사소통에 성공했다. 박사의 연구 내용은 영장류의 언어 이해 능력을 조사하는 실험에 줄곧 인용돼 왔다.
ACCI 관계자는 “칸지는 럼보 박사와 함께 ACCI에서 여러 어구를 조합해 자발적으로 문장을 만들었다. 최종적으로 약 3000개의 어휘를 이해했다”며 “칸지는 자발적으로 사람의 언어를 익혔고 인간과 유인원의 대화가 가능함을 알게 해줬다”고 돌아봤다.

이어 “칸지는 언어가 아닌 인간의 표정이나 시선만으로도 정답을 유추하는 유인원으로 기록됐다”며 “목소리만으로 받은 지시를 이해하고 팩맨 같은 게임의 룰을 이해하는 한편 장작을 모아 불을 붙이고 마시멜로를 굽고 물을 부어 불을 끄는 고도의 지능을 보여준 유일무이한 유인원”이라고 강조했다.
칸지는 영장류의 언어 이해 연구에 많은 공을 세웠지만 럼보 박사 등 연구자들은 비난도 많이 받았다. 일부는 럼보 박사가 서커스 조련사처럼 칸지를 혹사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때문에 럼보 박사는 2012년부터 휴직했고 이후에도 피소되는 등 곡절을 겪었다.
일부 언어학자들은 칸지가 말을 이해하고 인간과 의사소통하고 것처럼 보일 뿐 언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