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만큼 세계 어디서든 주목 받는 이야깃거리가 또 있을까. '링' '주온' 등 공포영화의 단골소재인 저주는 그 효력을 실제로 믿는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의 주술로 발전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 장희빈이 거처인 취선당 서쪽에 사당을 만들고 중전의 형상을 한 볏짚인형에 칼을 꽂으며 저주한 사실이 유명하다. 사람들이 믿는 저주의 효력은 과연 진짜일까.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재도 그 명성(?)이 자자한 저주는 유형이 아주 다양하다. 영국의 TV 댄스 리얼리티 '스트릭트리 컴 댄싱(Strictly Come Dancing)'은 출연자가 반드시 이혼이나 염문, 사고 등을 겪는 저주로 악명이 자자하다. '파라오의 저주'나 '아미티빌의 저주' 등 사람이 죽어나가는 문제부터 '밤비노의 저주' 처럼 스포츠 승부에 관한 것 등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유명한 저주 몇 가지를 더 들어보자. 프랑스에서 매년 개최되는 자전거투어 '투르 드 프랑스'의 경우 우승한 선수가 반드시 사고를 당한다고 해서 한때 난리였다.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몰고 나갔다 요절한 할리우드 스타 제임스 딘의 경우 '차에 걸린 저주'로 지금도 회자된다. 히트 영화 '007'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상대역 본드걸로 출연한 여배우들은 반드시 다른 작품을 망친다는 저주도 할리우드에서 유명하다.

'링'과 함께 저주 시리즈의 대표작인 '주온'의 한 장면 <사진=영화 '주온:더 파이널' 스틸>

 ■과학으로 본 저주의 심리현상
과학자들은 저주를 이성적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주를 설명하는 데 동원되는 것은 주로 심리학이다. 

이스라엘의 저명한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은 사람들이 저주를 믿는 행위가 사고 스타일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저주가 실존한다는 사람들은 무의식적, 주관적, 직감적 사고방식으로 현상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사고방식에는 직감적·기능적인 판단과 침착한 이성적 판단 등 2가지가 있는데 전자의 경우 판단 미스를 저지르기 쉽다. 저주를 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대개 전자에 해당한다. 저주에 대한 믿음은 미지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사람 특유의 열망에서 비롯되기도 한다는 게 카너먼의 분석이다.

특히 카너먼은 구운 식빵에서 예수 얼굴을 떠올리는 등 인간만이 가진 성격적 특성이 저주를 존재하게 한다고 봤다. 그는 "인간은 무작위 정보 속에서 규칙성과 연관성을 찾으려 한다"며 "의미 없는 신호들 속에서 유의미한 패턴을 찾으려는 아포페니아(Apophenia)가 저주를 실존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카너먼의 말대로라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도 굳이 규칙이나 연관성과 결부하려는 인간 특유의 아포페니아가 저주를 만들어왔다. 특히 좋지 않은 일을 겪었을 때 우연이라고 털어버리지 못하고 원인을 찾으려 규칙성을 끼워맞춰왔고, 비슷한 종류의 데이터가 쌓이면서 갖은 저주가 생겨났다는 지적이다. 특히 미디어나 호사가들이 떠들어대면서 '파라오의 저주' 등 스토리를 가미한 저주가 인공적으로 탄생했다.  

인지심리학을 통해 널리 알려진 '바넘 효과(Barnum effect)'도 저주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바넘 효과'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성격적 특성을 자신의 것과 일치한다고 믿으려는 경향이다. 아무 것도 아닌 정보를 굳이 특정인물, 일테면 본인과 연관지으려는 저주의 패턴과 매우 연관이 깊다.

■저주를 믿는 사람들의 심리는
과학자들은 저주를 믿는 사람들이 특정한 패턴 중에서도 잠재적으로 불운과 연결된 증거를 찾으려 든다고 분석했다. 즉 무의식적으로 악운으로 이어지는 증거를 찾으려 하고, 그와 모순된 정보는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성향은 앞서 언급한 매스컴의 보도로 더욱 확고해진다. 대표적인 예가 '파라오의 저주' 즉 '투탕카멘의 저주'다. 이 이야기는 파라오의 무덤에 든 자에게 저주가 내린다는 것이지만 투탕카멘 무덤을 발굴한 시점에서 고고학자들에게는 아무런 재난이 일어난 바 없다. 일부 언론이 '파라오의 저주'를 각색해 보도하면서 뒤늦게 일어난 발굴 팀원들의 죽음이나 재난이 저주와 억지로 연결된 사례다. 

또한 저주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지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부정적인 일을 겪은 경우가 많다. 불가항력인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당하면, 사람은 더욱 수수께끼 같은 외부의 힘을 믿게 된다는 것. 심리학자들은 이를 '주술적 사고'라고 부른다.

저주를 믿는 것은 나아가 특정한 인격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애매한 상황을 못 참는 강박신경증이 대표적이다.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내성은 그 사람이 불안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데, 강박신경증을 가진 사람은 증거를 찾기보다 곧바로 결론을 내려 초조해한다. 때문에 본질을 엉터리로, 지레짐작해 버리곤 한다. 심할 경우 저주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키워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극단적인 일부 강박증 환자는 저주를 믿으면 자신이 없어지고 미래의 성공도 위태로워진다고 의심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자기달성적 예언이라고 칭한다. 아무리 좋은 약도 독약이라고 알고 먹으면 신체에 악영향을 주는 '노시보 효과'도 이런 심리에서 비롯된다.

■저주를 믿는 사회적 요소

끝없는 저주를 묘사한 영화 '링'의 한 장면 <사진=영화 '링' 스틸>

저주의 영향은 문화적 배경에서 관찰된다. 특히 교육이나 사회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을 통해 저주의 개념은 오랜 시간에 걸쳐 확고한 힘을 갖는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어엿한 문화로 받아들여져 사회에서 당연시되곤 한다.  

문화가 변화함에 따라 저주가 변모하기도 한다. 사람을 저주하려고 노려보는 것을 '사안'이라고 하는데, 과거에는 진짜 사람을 죽일 목적으로 이 저주를 사용했다. 최근에는 성공한 사람이 주변에서 부러운 시선을 너무 받으면 곧바로 실패를 맛본다는 형태로 그 내용이 변질됐다. 

분명한 것은 저주의 과학적 근거는 이렇다할 것이 없지만 사람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은 여전히 크다는 사실이다. 저주를 믿는 것은 의사 결정 능력을 약화시켜 행복감과 자신감을 크게 떨어뜨린다. 극단적인 경우, 자신의 머리로 생각할 수 없게 되거나 이상한 생각에 홀리거나 기묘한 행동에 이르기도 한다. 

때문에 카너먼 같은 일부 심리학자들은 저주를 하나의 학설로 받아들이고 대대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아직 저주는 과학계에서 그 어떤 학설로도 인정되고 있지 않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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