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은 러시아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를 하늘로 쏘아올린 지 63년이 되는 날이다. 인류의 우주시대를 활짝 연 러시아는 1961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시간29분 만에 지구 상공을 일주하면서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 타이틀도 획득했다.

비록 미국에 최초의 달착륙 기록은 빼앗겼지만 러시아의 우주과학기술은 이전도 그렇고 현재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스푸트니크 발사 63주년을 맞아 러시아 우주개발 도전사가 주목 받는 가운데, 우주인들이 휴대했던 권총에도 새삼 관심이 쏠린다. 

■비행사들을 지켜라!

러시아 우주비행사 <사진=pixabay>

러시아 우주인들은 유리 가가린 시절, 그러니까 소련부터 권총을 휴대했다. 이 사실이 일반에 알려질 당시, 사람들은 무중력 공간에서 우주인들이 권총으로 뭘 하려는지 궁금해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우주인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무기였다. 그것도 우주공간이 아닌, 지구로 돌아올 때를 대비해 권총이 마련됐다. 

아주 오래 전부터 우주개척에 국력을 투입해온 소련은 우주공간에서 활동은 물론 지구로 귀환하는 스타일이 미국과는 사뭇 달랐다. 미국의 경우 지구로 귀환할 때 우주인들이 바다로 떨어지며, 이에 대비해 철저한 훈련을 거친다. 이와 달리 소련 우주인들은 육지로 떨어지며, 이를 시뮬레이션한 훈련을 받는다.

소련 우주인들의 총은 바로 이 때 쓰라고 휴대한다. 지구로 귀환 시 만약의 사태에서 몸을 지키기 위해서다. 바다가 아닌 육지에 떨어지는 소련 우주인들은 이따금 오지에 착륙하는데 당시 기술로는 구조되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동안 우주인들은 야생동물이나 범죄요소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총기 휴대가 필수였다. 

■어떤 총이 지급됐나

소련 우주비행사들이 지참했던 마카로프. '콜 오브 듀티' 같은 게임에도 등장한다. <사진=KGB Survivalist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Makarov PM : Classic Soviet sidearm' 캡처>

AK-47이나 토카레프 등 유명 총기가 즐비한 러시아. 소련 우주개발당국이 우주인들에게 최초로 지급한 권총은 마카로프였다. 이 권총은 소련의 무기 개발자 니콜라이 표도로비치 마카로프의 이름을 땄다. 마카로프는 표도르 바실리예비치 토카레프, 이고르 스테츠킨,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총기개발자다. 

소련의 우주비행사들은 유리 가가린 시절부터 마카로프 권총을 휴대한 채 훈련을 받았고, 우주공간에도 이 총을 갖고 나갔다. 마카로프는 당시 소련 경찰들이 사용하던 총기이기도 하다.

다만 마카로프의 화력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총기 교체가 검토됐다. 숲에 떨어진 우주인들이 곰과 만났을 경우, 마카로프로는 도저히 생명을 구하기 힘들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실제로 1965년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소련의 엘리트 우주비행사 파벨 벨라예프와 알렉세이 레오노프는 지구로 돌아오면서 침엽수가 빽빽한 숲에 비상착륙했다. 오지 특성상 구조대가 당장 달려올 곳이 아니었고, 두 우주인은 꼬박 사흘을 버텨야 했다.

당시 파벨 벨라예프와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소지한 무기라곤 마카로프 권총과 서바이벌 나이프 뿐이었다. 막 겨울잠에서 깬 굶주린 곰이 습격했을 때 9mm 마카로프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두 우주인은 발에 불이 나게 뛰며 위협사격을 할 뿐이었다.

다행히 이들은 무사히 구조됐지만, 이 일로 레오노프는 비상착륙 시 살아남을 수 있는 특별한 무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4년간 우주인을 지켜준 TP-82

1982년 처음 도입된 우주비행사 호신용 화기 TP-82 <사진=Lazarev Tactical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Пистолет Космонавта ТП 82 или Бластер Космодесантника. Секретные разработки СССР для Звездных войн!' 캡처>

이후 소련 우주인들에게 지급된 권총이 TP-82다. 우주비행사 생존 권총(Cosmonaut survival pistol)이라는 명칭을 대놓고 붙인 것을 보면, 소련이 우주인 보호를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 지 짐작할 수 있다.

1982년 처음 우주로 날아간 TP-82는 무게 2.4kg의 육중한 몸집을 자랑한다. 권총이라기보다는 아담한 쌍발 산탄총이라고 보면 된다. 자동장전이 가능한 상부의 32구경 활강형 쌍발 총구 밑에는 5.45x39mm탄을 사용하는 총구가 하나 딸려있다. 독특한 삼발권총 TP-82는 조난신호를 보내는 섬광탄 사용도 가능했고 탈착 가능한 개머리판에 날카롭게 날을 벼린 손도끼도 부착됐다. 덕분에 러시아 우주인들은 밀림이나 숲에 떨어져도 마카로프 시절보단 생존에 확신을 갖게 됐다.

상부의 쌍발과 하부 단발 총 삼발 구조의 TP-82 <사진=Lazarev Tactical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Пистолет Космонавта ТП 82 или Бластер Космодесантника. Секретные разработки СССР для Звездных войн!' 캡처>

TP-82는 2006년까지 무려 24년간 우주비행사들이 휴대했다. 하지만 2007년 이후 TP-82는 표준 긴급장비에서 제외됐다. 그 사이 위성항법장치(GPS)가 개발돼 착륙한 우주인 구조에 시간이 걸리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러시아 우주인들은 10년 이상 권총 등 개인화기를 휴대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9월, 러시아연방우주청(Roskosmos, 로스코스모스)은 우주인들의 총기 휴대를 재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유인 우주선의 발사 장소가 향후 러시아 극동으로 옮겨지는 데 따른 결정이다. 지구 귀환 시 우주비행사가 자신의 몸을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무기 도입은 역시 필수라는 것이 러시아우주개발당국의 결론이다.

현재 우주인이 사용할 화기를 시험 중인 러시아우주개발당국은 고성능을 발휘한 TP-82와 같은 우수한 무기를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후보군이 적잖아 향후 어떤 화기가 우주로 날아가게 될 지 주목된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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